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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r 13. 2023

봄은 꽃샘추위와 함께 옵니다

봄맞이 준비와 꽃샘추위


 이번주부터는 완연한 봄인 합니다.

벼르던 일을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봄맞이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마당 있는 집에서 몇 해 살다 보니, 땅은 바친 노력이상을 돌려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매일의 삶인데,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땅을 밟고 살기 때문인듯 합니다.


 전년보다 훨씬 추웠던 지난겨울엔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물론 눈이 제법 와 하얀 겨울왕국의 아름다운 설경도 즐겼지만, 겨울은 경제적인 부담도 많이 요구해 어서 봄이 오길 기다렸을 뿐입니다.

겨울이야 눈으로 얼음으로 추위로 덮여있으니 마당의 본모습은 아랑곳없습니다.

 

 그러나 봄은 속살 내비치는 일을 먼저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내 보이니, 여름을 위해 가꾸는 것 이상으로 정리를 요합니다. 올해는 작년보단 더 신경 써주리라 결심한 대로 마당정리를 시작합니다. 먼저 낙엽과 지저분한 흔적들을 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겨우내 보온을 위해 입혔던 보온재를 걷어내고 밑동에 곁가지들이 나온 것들도 잘라 줄 요량입니다.


 올해는 정원그림일기를 써 갈 예정이라, 나무들을 정리해 봅니다.

라일락꽃의 향기는 학창 시절의 주억을 불러옵니다. 라일락  두 그루, 봄의 전령사 산수유, 보랏빛열매가 너무도 예쁜 좀작살나무, 세 가지 꽃 색을 본다는 셀렉스, 꽃이 예쁘고 오래가는 미산딸나무(분홍과 노랑), 좋아하는 배롱나무도 몇 그루입니다. 우리 마당엔 작년엔 제법 수확을 한 대봉감나무가 있지만 유실수보다는 꽃나무가 많은 편입니다. 스스로도 언제부터 꽃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게 아름답게 꽃피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청단풍, 홍단풍, 진분홍꽃이 너무 예쁜 박태기, 목련,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칠자화 그러고 보니 나무 종류도 다양합니다. 사철 푸르른 좋아하는 소나무도 있지만, 백일을 간다는 배롱나무나 산딸나무도 화려한 색의 꽃을 피우지만 신기하게도 촌스럽거나 질리지 않습니다.

파란 하늘아래 나부 까는 원색의 꽃잎들이 너무 조화롭습니다. 자연이 만든 작품이라 그런가 봅니다. 나무는 겨울에 얼어 죽지 않도록 보온해 주고 병든 가지를 제거해 주며 적절한 양분을 공급하면 손은 덜 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린 나무들이 대부분이고, 마당에 살면서도 나무들은 아파트에 살게 하듯  좁은 간격으로 심은 것 같긴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훌쩍 큰 나무는 없습니다. 어차피 크게 키우기는 힘들기에 꽃 보기 좋을 정도의 키로 적당히 관리해 가면서 함께 지내야 할 것입니다.


 보온재를 제거하니 속이 후련합니다. 꽃샘추위는 견디리라 믿으며 사실 나무들도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밑동의 습기가 차서 이끼가 끼기도 했고 곁가지들이 자란 것도 많습니다. 가뿐해진 몸에 시원스레 새 봄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아름다운 결실을 많이 맺기를 바래봅니다.


 장미는 보온재로 싼 후 속에는 신문지 같은 것을 구겨 넣어 바람막이를 해줬더니 여러 그루 중 한그루만 밑동까지 마른 듯하고 나머지는 괜찮은 것 같아 죽은 가지를 조심스럽게 잘라냅니다.

보온재를 다 벗겨내고 낙엽과 정원 속에 있었던 잔디, 풀등을 제거하니 속이 후련합니다.

올여름 부식류를 다양하게 제공할 뒷마당 텃밭부터 퇴비와 유박을 골고루 뿌린 후 흙을 갈아엎습니다.


 정원에 심은 꽃들은 겨울 넘기기가 힘들고, 풀이 많이 나 정리도 해야 하고 나무보다는 손이 많이 갑니다. 봄맞이 준비를 위해선 정리를 하고 비료도 줘야 합니다. 풀이 맹렬하게 올라오기 전에 꽃들이 자리를 단단히 잡게 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마당구석구석엔 여러 종류의 구근류를 해마다 심어 어디서 무엇이 나올지도 궁금할 정도입니다. 올해도 아이리스와 제피란서스, 그리고 카라구근을 주문했습니다. 담장밑의 으아리가 해가 덜 들어서인지 이웃에 비하면 잘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 붉은색과 보라색의 으라리(클라멘티스)를 주문했습니다.


 부지런히 마당정리를 하고 있는데, 삼냥이 중 가장 애교가 많은 깜냥이가 잔디에 등을 비비면 배를 내보이고 애교를 떱니다. 나무나 꽃처럼 마당의 친구라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올해는 마당도 헤집고 다닐 것 같은데, 혹여라도 장미가시에 찔릴까 봐 염려도 됩니다.


 주문한 구근류와 으아리가 도착해 자리를 잡아 심어줍니다.

익은 봄에 예쁜 꽃들을 잘 피워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던 귀한 봄을 맞기 위한 작은 준비를 한 하루였습니다.


 낮의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갔던 포근한 날씨는 주말이 되며 급강하했습니다. 한동안 너무 따뜻해졌던 날씨에 옷차림부터가 달라졌는데 방송에서는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야 할 것 같다고 호들갑입니다. 몸으로 입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봄을 맞이하려 사방에서 올라오는 아이들은 며칠 동안의 깜짝 추위에 어찌 견딜까 생각하니 자못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자연에게 배운 교훈으로 담담해져야 함을 압니다.

"살 녀석은 살고 떠날 아이는 떠날 것이고, 떠나도 내년이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바람도 심했던 밤이 지나고 가장 춥다는 오늘 아침, 따뜻한 햇살은 마당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습니다.

아! 먼저 핀 수선화는 여전히 수줍어하고 있습니다. 노랗게 고개 들 순간만을 기다리는 아이도 여전합니다.

인간에겐 호들갑을 안겨준 꽃샘추위는 어쩌면 이아이들에겐 함께 가야만 할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밝은 날엔 햇살이 여전하기만 빌고 일이 잘 풀릴 땐 "지금처럼만 같아라"를 바라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지금처럼만 같아라"는 없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지금처럼만 같지 않았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한 어떤 변화라도 자연 속의 생명들은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동화(同化)합니다.

자연 속의 여러 다름이 서로 틈을 주고 함께 하며 보듬어 온 것이 "지금"입니다.

봄의 첫 기운에 겨우내 참았던 꽃봉오리를 활짝 연 수선화에게 갑자기 닥친 꽃샘추위는 여린 꽃잎을 더 아름답고 실하게 해 줄 동무였습니다.


 간밤 추위에도 당차게 견뎌 낸 여린 수선화를 보면서 "당장"의 삶에서 불쑥 치고 들어오는 예상하지 못했던 "고난"도 결국은 지나가버릴 "거름"에 불과하다는 것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봄은 지나가는 추위마저 품으며, 앞으로 이어 갈 날들 속에 닥쳐 올 어려움과 동화될 때 공존(共存)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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