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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l 30. 2021

경단 육개월을 지나며...

잠시 멈춤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입맞춤


오랜 시간, 같은 일상을 반복해왔다.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근해서 일하는 되풀이되는 삶. 컨베어벨트가 끊어져 잠시 쉬어 가게 된 요즈음, 마음은 여유를 가지려 애써도 몸은 자동화된 것처럼 눈이 떠진다. 회사 다닐 때는 아침에 여유롭게 갓 구워진 빵 한 조각과 커피 한잔 마시면서 느긋이 신문 읽는 낭만의 삶을 동경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한다. 베이글 반쪽을 에어 프라이어어에 구워서, 사과와 견과류를 놓고 향 좋은 커피 한잔과  아침을 즐기는데, 20~30분이라도 여유 가지면 좀 좋을까 마는 10분도 안되어 다 먹는 것 같다. 쫓아올 사람도 없는데 왜 바쁜데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어도 뭐랄 사람 하나 없는데, 경단 육 개월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뒹굴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다 내려놓고 게으르게 몇 달 만이라도 살아봐야지 했는데, 내 몸은 이미 게으르고 편하게 와는 다르게 고착되었나 보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어디가 덧나는 것 같고, 책이나 tv를 시청하면서도 "이렇게 시간 보내면 안 되는데..." 하는 메아리가 이명처럼 귓전을 때린다. 버겁게만 느껴졌던 "조직"이라는 울타리가 그래도 몸에 잘 맞는 옷이었던가 보다.


다행히 몇 가지 행복한 특권을 가지고 있어 경단의 공허함을 메꿔가며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시골에 살고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 흙냄새를 맡을 수 있고 마당에 나가 잡초라도 뽑을 수 있어 위안이 된다. 아침 먹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그 덕에 걸으며 운동까지 한다. 집에 와서 마당 걷고 얘들 씻기고 청소하고, 책 조금 보면 금방 점심시간 된다. 모 방송사의 "삼시세끼" 프로그램이 성공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별다른 일 없으면 집에 있으니, 아침하고 돌아서면 점심때고, 점심 치우고 잠시 지나면 저녁 준비해야 할 때다. 굳이 예능에서 그 과정을 재밌게 표현 안 했어도 나 역시 세끼 준비하면서 때로 지겹기도 하지만 즐기는 때가 많다.


브런치를 통해 그동안 쓰고 싶었던 글을 쓰는 것도 큰 특권이다. 아직 작가로서 많은 공감과 큰 호응을 얻고 있진 못하지만, 우선은 나만의 공간에 그때그때 느껴가는 삶을 글로써 채워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글을 100편 가까이 써가도 늘지 않는 구독자수에 내 글의 부족함이 고민도 되지만,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합격했을 때의 감동을 잊지 않으려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지금, 힘든 환경 속에서도 착실했던(?)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큰 교훈,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버티기와 견디기"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라도 공평하게 주어진 인내(忍耐)의 선물을...


예전엔 살기 위해 먹었다면 요샌 때로 먹기 위해서도 사는 듯하다. 함께 먹기 위해서는 물론, 혼자 먹을 때도 뭔가 "요리다운 요리답게" 하고 싶은 거다.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나,  인생에서 의미를 두고 했던 일이나, 해야 할 일들도 "먹어야 사는 삶"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서인지도 모르겠다. 흘려보내기 쉬운 일상의 작은 소중함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다.


새로운 일이야 곧 찾겠지만 쉬고 있는 동안에도 염려스럽고 뭔가 할 일을 남겨둔 것 같은...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이미 풀려진 족쇄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나는, 이제부터라도 "자유"를 배워가야 하는 어리고 배고픈 영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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