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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Sep 15. 2022

스마트폰으로 쓴 그리스 기행기 1

기내, 와 보고 싶었던 그리스

 2019.11.16~11.25까지 회사 지인들과 그리스, 튀르키예(터키)를 여행하면서 곳곳의 기록을 갤럭시 노트5에 기록한 글입니다. 튀르키예 여행은 이전 "스마트폰으로 쓴 터키 기행기" 다섯 편과 중복되어 그리스 기행만 짧게 올립니다. 여행의 추억이 익어갈 무렵 터졌던 코로나로 묶마음을 기행기를 쓰며 풀어 갑니다.




2019.11.16

날씨는 화창하고 함께 가는 사람들도 밝고 명랑하다. 좋은 여행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역사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리스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역사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심어준 곳이기그런지도 모르겠다. 여러 이유로 유독 그리스 여행을 가기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 지인 네 명과 그리스와 터키(터키는 2022년 6월 1일부터 튀르키예로 UN에서 국명 승인되고 우리나라는 6월 23일부터 정식으로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공식 사용함)를 여행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자유롭게 다니는 것은 후일로 미루고 짧게라도 다녀오기로 한다. 그리스에서의 일정은 아테네와 테르모필레, 메테오라 이틀에 불과하지만 그리스에 대한 애정은 적지 않아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써간다.


내가 어릴 적엔 문고판, 전집을 많이 판매었다. 아직까지 소중히 생각하는 전집은, 1982년도 삼성출판사에서 펴낸 "대세계의 역사"라는 A4 크기의 12권짜리 전집이다. 지금이야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통해 마음껏 모든 자료를 찾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전집이나 사전이 없인 특정분야의 전문 지식에 대한 습득이 쉽지 않았다. 이사 다니면서 옛날 책을 많이 정리했지만, 이 책은 아직도 파손 없이 잘 보존하고 있다. 오래된 책 내음 속에 어린 시절의 추억도 담겨있고, 어찌 펼쳐질지도 몰랐을 미래에 대한 꿈의 흔적이 곳곳에 베여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시절 이 책을 읽으며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가보고 싶었던 꿈을 키워왔다.


오늘도 역시 일찍 도착해 잠시의 여유를 가져보지만, 10분이라도 더 늦게 오려 안달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참 할 일 없는 사람이란 생각도 든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공항에서 기다림의 즐거움을 가진다. 화려함 속 진솔한 언어의 표현 붓 하나로 칠하고 묘사하며 자신의 느낌을 캔버스로 옮기는 화가의 애정 어린 예술품 지않다. 11시 51분 출발 터키항공 TK0091 만석이라는데 복도석에 앉아 가게 되니 그것도 축복이다. 12시간 비행에 잠도 좀 자야 할터인데 커피를 마셔서 어떨까 싶다. 옆에 앉은 남녀는 신혼부부인지 모르겠는데 남자분이 유난히 다리를 떤다. 유난히 다리를 벌리고 앉는 사람과 다리 떠는 사람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의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일까.


대세계의 역사 2권, 아크로 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 사진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 구경을 한 후 우리는 일찍 기내로 들어와 휴식을 취한다. 기내식으로 대구요리가 나왔는데, 생선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속이 좋지 않다. 더부룩한 속을 달래며 그냥 먹지 말 것을 그랬나 싶다.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것은 이미 다 지불한 경비에 들어있는 것이니 누릴 것은 누려야 한다는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기내식도 꼭 건드려보는 편이다. 탑승전 저녁으로 야채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는데 그 기분 그대로였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잠도 청할 겸 기내 영화 한 편 본다. "더 아트 오브 레이싱 인 더 레인 the art of racing in the rain" 재기 넘치고 철학적인 견공 엔죠와 주인 데니의 끈끈한 유대를 그린 영화다. 개가 나온 영화면 다 좋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다. 개는 사람에게 사랑과 의리를 심어놓고는 우리보다 빨리 떠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기억되는 말 "훌륭한 카레이서는 현재에만 집중해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은 나중 문제다" 현재를 살고 있는 모두에게 특히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싶다.



이륙한 지 제법 되어 사람들도 잠을 자고 영화를 보는지 기내가 조용하다. 이어폰을 꽃은채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그리스를 향하는 마음을 열어 본다. 출장으로든 여행으로든 많은 나라를 다녀왔지만, 이제야 그리스를 찾게 되니, 아끼는 것을 감춰두고 먹어야 하는 재미 같은 것일까?

아니다. 좀 더 긴 여유를 찾다 보니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번에도 그리스에 머무는 것은 이틀이다. 고작 이틀 머물고 그리스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다만, 오랜 기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이틀이라도 충분하다. 이제 시작이니까...


그리스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단순히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에게문명의 발상지인 크레타섬과 크레타섬 남쪽의 미케네섬, 동북쪽의 마케도니아까지 다녀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지중해가 로마의 탄생과 성장을 이루어간 곳이라고 한다면 그리스와 소아시아, 크레타섬에 접해있는 에게해는 고대 에게문명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내게 그리스는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석양보다 고대 그리스의 탄생과 발전에 영향을 줬던 크레타와 미케네의 묻혀있던 신화 같은 문명의 발상지로 더 기억되고 있었다.


대세계의 역사, 그리스 세계 (델포이 신전과 그리스 편 글)


책의 소제목 중 "그리스의 자연은 다정(多情) 하나 가난하다"라는 표현이 있다. 일 년 중 300여 일이 햇살이 좋은 날이고 공기도 건조해 외부 생활을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비가 적고 광활한 평야도 별로 없어 농작물이나 목축으로도 많은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바위산이 많고 대리석과 고령토가 풍부해 신전 건축물과 조각상과 도자기 등이 많았고 오늘날도 그리스를 대표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혜택이 부족했던 도시국가 아테네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원이 풍부한 다른 나라를 식민하는 것이나 식량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오는 길뿐이었다. 수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고대에 "에게해"라는 천상의 조건을 갖춘 바다를 통해 영역을 넓히는 것은 그리스인으로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역사를 얘기할 때 미케네와 트로이를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을 얘기 안 할 수가 없다.  19세기 말 하인리히 슐리만이 미케네, 트로이 유적을 발견한 후, 1900년 크레타섬의 크놋 소스 궁전의 유적이 발견되고  전설로만 전해오던 에게문명은 현존했던 문명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슐리이만은 어릴 때부터 미케네와 트로이 그리고 크레타 문명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실존했을 역사라 믿고 자신이 언젠가는 발굴하리라는 꿈을 꾸면서 준비해 왔다. 어린 소년의 꿈은 마침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호메루스의 "일리아드"로 익숙했던 이야기들이 확인되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에게해의 주역으로 그리스 문명을 구축해온 역사를 확증해 준 것이다. 미케네 문명은 에게문명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은 알렉산더 사후 헬레니즘 문화로 이어져 철학과 문학 건축 모든 분야에서 절정을 이룬다. 고대 그리스는 로마에 의해 멸망되었지만, 그리스 문명은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로마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 서남아시아나 북아프리카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마를 통해 더 발전해나간 그리스 문화는 중세 이슬람 문화는 물론 르네상스에도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까지 발전하고 성장해온 인류의 문화, 문명에 자양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는  아테네와 메테오라 밖에 다녀오지 못하지만, 아크로 폴리스를 보고 첫 발을 내디디게 되니 다음 여행 여유 있는 일정으로 크레타와 미케네까지 다 둘러볼 생각을 해본다. (다녀오고 코로나가 발발했으니 아마도 여러 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스와 관련된 것 중에 좋아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리아 칼라스 때문이다.  마리아 칼라스의 본명은  '마리아 안나 소피아 카이킬리아 칼로게로풀루스"였지만 미국으로 이민 온 아버지 조지가 "칼로게로풀루스"를 "칼라스"로 바꿨기에 "마리아 칼라스"로 알려다. 마리아 칼라스는  미국으로 이민 온 그리스인 부모에게서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미국계 그리스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돌아와 생활하게 되고 나중에 그리스로 귀화한다. 성악가가 꿈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어린 마리아 칼라스를 힘들고 혹독하게 교육시켰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여러 자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연인관계로 이어지며 파리에서 53세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삶의 순간순간을 한 장씩 찢어 불태우듯 살지 않았나 싶다.


마리아 칼라스는 레나타 테발디와 함께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다. 물론 우리나라의 조수미 씨 홍혜경 씨 등 현존하는 유명한 소프라노도 많지만, 마리아 칼라스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묻혀있던 벨칸토 창법을 부활시킨,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애절함과 마력이 그가 부른 모든 아리아에 스며있는 듯하다. 또한 그는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다양한 역을 누구보다 완벽히 소화해냈다. 우리 역시 인생이라는 오페라의 주인공 아닌가. 대본도 없는 인생 오페라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을 소화해 내기란 쉽지 않지 않다. 각자가 주인공인 오페라에서 때론 관객 없는 무대 위에서 애절한 아리아로 힘들 때도 있다. 감당하기 힘든 배역이 주어질 때도 예행연습 없이 잘 해내간다. 개인적으로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지만, 필명을 오페라로 쓰는 것도 그런 연유다. 뭐든 해보고 싶고 인생의 주어진 역할에 게으르고 싶지 않아서이다.


마리아 칼라스와 더불어 "조르바"의 고향, 오래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희랍인 조르바"를 읽으며 그리스에 와 보고 싶었다. 혈기 왕성했던 청춘 시절, 희랍인 조르바는 대부분 한 번은 읽어 봤음직한 책 아닌가. 책에서의 나는 "우리"다. 나는 조르바에게서 "초인"을 발견한다.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조르바는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내친김에 기내 고전영화에서 앤서니 퀸의 열연이 돋보였던 "희랍인 조르바"를 다시 보며 투박하지만 단호했던 조르바의 경고를? 외침을 기록해 본다.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인생이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를 써요.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나무 위키 그리스인 조르바)

"산투르"는 벽으로 갇힌 방이 싫대요. 이놈은 거칠어요. 그러니 넓은데로 나가야지.

그는 굵은 손가락을 산투르 위에 올리고 목을 뽑았다. 그리고는 거칠게 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마음 한번 먹었으면 밀고 나가라. 후회도 주저도 말고.

고삐는 젊음에게 주어라. 다시 오지 않을 젊음에게.

네가 너를 잃지 않는 순간은 네가 이기는 순간!"

"용기! 빌어먹을! 모험! 올 테면 오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어요. 이놈의 세상이 좀 작아지든지, 내가 좀 커지든지 해야지, 둘 다 안되면  이것 참 큰일입니다. 그려"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역)



걸러지지 않은 거친 표현 속에 내면의 자유를 발산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옳다 그르다"의 표현을 덧대고 싶지 않다. 인생이라는 격랑의 파도 속에서 누구라도 당당하게 외치면서 대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으니.


소화가 잘 안 돼서 인지 어깨도 아프다. 이제 시작인 여행이 벌써 힘들다고 느껴지니, 그리스 보기가 쉽진 않다. 가져온 책 유** 씨가 쓴 아테네 책을 읽었는데 정말로 말하듯이 잘 써나간다. 그저 참 잘 쌌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여행기도 이 정도를 써야 한다면 나의 여행기는 간을 제대로 못 맞춘 국물요리나 진배없지 않겠는가.


드디어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공항이라, 여러 해 전에 입국했던 "아타튀르크"공항과는 비교도 안되게 넓고 깨끗하다. 두바이 공항을 모델로 했는지, 비슷한 느낌이 많이 든다. 2시간 후 8시 30분에 아테네 TK1845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가까운 거리라 작은 비행기고 이미 만석이다. 30분 비행을 위해 3시간을 기다린 후 이제 이륙한다.




p.s.  마리아 칼라스를 좋아하시는 분을 위해 오페라 아리아 두곡을 올려 봅니다.


1.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세니에"중 "라 맘마 모르타(La mamma morta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우리에겐 영화 필라델피아의 테마곡으로 잘 알려진 곡이기도 하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5oZi2fovnZQ


2.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중 "코스타 디바(Casta Diva 정결한 여신)"

https://www.youtube.com/watch?v=B-9IvuEk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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