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태풍이 올라온다고 마당도 흔들리고 있다.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가려다 벤치에 몇 방울 떨어지는 비를 보고 그냥 마당을 돌기로 한다. 아이들이야 마당이던 산책길이던 어디든 상관없이 나가기만 해도 좋아하니 몇 바퀴 돌고 테크 위에서 이름을 불러가며 함께 달려 준다. 이십여분 논 후에 테크 구석 의자에 방석을 깔고 아이들과 같이 앉는다. 강아지들은 코를 킁킁대고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엎드려 쉰다.
차 한잔을 놓고 옆에 앉아 멀리 펼쳐진 흐린 산들을 보면서 휴일의 여유를 즐긴다. 마냥 앉아있어도 좋은데 잠시를 그냥 있지 못한다. 핸드폰을 안 챙겨 왔네, 차를 마신 후엔 따뜻한 물도 먹어야 되는데, 바람이 심하게 부니 제법 차게 느껴져 강아지들에게 뭔가라도 덮어줘야겠다...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인 듯하다
잠시라도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고 쫓기듯 치닫는 삶에 언제쯤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긴 데크 난간 위에 참새떼들이 모여든다. 참새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올해는 어디서 왔는지 녀석들이 제법 보인다. 혹 이 집에선 아침마다 모이 준다는 것을 바람결에 듣기라도 했는지 의심이 간다. 여기서 흔히 보이는 예쁜 새, 딱새인지 곤줄박이인지 아무튼 참새 아닌 아이들은 혼자 다니거나 한두 마리씩 다닌다. 그런데 제비들과 참새들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제비들은 참새떼보다 더 많이 몰려다니고 참새들도 무리 지어 다니는 편이다. 나무와 꽃이 있으니, 새들이 많이 오는 것은 당연하고 가끔 솔개처럼 큰 새가 보이기도 한다. 한 줌 모이라도 다양한 아이들이 먹고 가기를 바라지만, 결국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밥만 먹고 가는 참새들만 규칙적으로 나의 급식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오늘따라 참새 녀석들이 재롱이라도 부리듯 난간에 앉았다가 총총거리고 뛰기도 하다가 모여있는 모습이 귀엽다. 착각인진 몰라도 그동안 먹은 밥값이라도 하려는가 싶고, 나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어 사진이라도 한 장 담아두려 폰을 들고 보니 어느새 날아가 버린다.
"뭘 굳이 남기려고... 그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즐기면 되지"라는 교훈이라도 주려는 듯... 새들의 본능은 "도망"인가? "적과 아군"의 개념이라도 있는 걸까? 참새와 제비는 무리를 이루는 것과 제 먹을 것 먼저 챙기는 본성과 앞서는 방어본능으로 사람과 비슷한 면이 많다.
이런 여유를 즐기는 때면 늘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미국에서 911 사태가 터진 직후 샌디에이고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조용함 속에 집집마다 미국 국기가 걸려있고 차량과 심지어 아이들 가방에도 국기가 달려 있던 엄숙한 분위기였었다. 날씨는 화창하여 샌디에이고 비치에 있는 쉐라톤 마리나 호텔 주변을 걷고 있었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샌디에이고가 미국에서 은퇴자들이 제일 살고 싶어 도시 중의 한 곳이라고 했다. 자신은 성공적인 은퇴를 하고 이곳에 와서 자신의 로망 대로 낚시를 하면서 이렇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참 부러워 보이는 정경이었다.
더불어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할아버지가 낚시를 하고 있는데 청년이 지나가면서 할아버지께 낚시를 하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 커다란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사업을 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고 본인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청년에게 말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청년이 묻자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낚시를 하면서 평안한 일생을 보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렇게 치열한 삶 속에서 고생하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낚시나 하면서 살면 되지 않았느냐? 고. 할아버지는 청년에게 젊어서부터 낚시를 했다면 자신은 그저 물고기를 낚는 낚시꾼밖에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낚시를 하기 위한 꿈을 향해 치열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순간순간의 파도를 싸워 이기며 견뎌왔기에 이제 낚시를 하더라도 물고기를 낚는 낚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겪어 온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을 낚기도 하고 놓기도 하면서 행복하게 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가 밑받침되어 이뤄진 지금의 낚시 생활이 좋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진정한 낚시꾼은 고요한 수면 아래 요동치는 또 다른 세계를 알 수 있고 그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청년이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진정한 여유와 공허함까지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치열했던 순간들이 모여 삭힌 거름 덕이 아닐까 싶다.
흐린 휴일에 이렇게 자유를 누리고 있다. 머릿속의 여전히 많은 욕심과 꿈과 번창하는 계획을 내려놓고 무조건 쉬어야 하는 훈련 인지도 모른다. 마당에는 막 분홍 꽃잎을 올리려는 칠지화와 붉게 물들어 갈 단풍나무도 있지만, 내년 봄에 피울 꽃을 위해 벌써부터 꽃대를 올리는 산딸나무도 있다. 옆에는 사시사철 푸르른 청춘의 꿈을 보이는 겸손한 소나무가 있다. 작은 마당에는 지금의 절정과 내년 봄의 아름다움, 그리고 언제나 푸름과 희망을 상징하는 나무들이 조용하게 공존하고 있다.
바람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이 휴일의 정취를 즐기고 있는 나의 작은 마음도 강아지들의 시선도 마당의 일부가 되어 대가 없는 호의를 맛보는 휴일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