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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Oct 06. 2022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른 사람, 그 사람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이른 아침 산책은 하루 중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다. 샐리는 산책시켜보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한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보리가 킁킁거리고 냄새 맡고 있으면 잽싸게 쫓아가서 그 자리에 흔적을 남긴 후 자기가 먼저 냄새를 맡는다. 가기 싫으면 아무 데나 주저앉는다. 가슴 줄을 두어 번 당겨야 마지못해 따라간다. 그러다간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발랄 그 자체로 경쾌하게 걸어간다. 한 가지 부러운 점은 제가 저질러놓고도 인식을 못하는 것인지, 필요에 따라 잘 잊는 것인지, 도무지 고민이 없다(없어 보이는?)는 것이다. 나중에 두고 삭히며 고민하는, 나 같은 인간은 100% 아닐 것이라 확신되는 점이다.

푸들의 타고난 성정이라면 샐리는 좀 더 푸들답다.


 반면에 보리는 소심하고 또 소심하다. 항상 곁에 붙어 걷는다. 웬만하지 않으면 앞서 가지 않는다. 어디 가도 붙어사는 껌딱지다. 다리가 무리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지 산책하기에 동반자로서 바람직한 모습을 보인다. 좋다고 달라붙는 아이를 외면할 수 없는 마음 약한 내 관심을 붙든다. 항상 앞서서 걷는 샐리의 뒤를 묵묵히 따라 걷는다. 취향에 맞는 어떤 냄새를 찾아 킁킁거리며 즐길 때 샐리가 와서 제 자리를 뺏어도 "으릉"한번 하는 적이 없다. 보리는 늘 양보하는 편이다. 샐리가 으르렁대면 한발 뒤로 물러나고 열 번을 그러면 한 번쯤은 저도 으르렁거린다.

 

 둘의 성격은 완전 반대지만 , 아직도 크게 싸운 적은 없으니 아마 서로의 특성을 잘 알고 지내는 것 같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서로의 영역?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경계는 건드리지 않는 것 같다.

신기하다.

조직, 사회생활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 같다. 사람으로 치면 항상 배려하고 잘 참는다. 어떤 스타일일까... 사티어의 유형검사로 해보면 보리는 회유형(배려형, 눈치형), 샐리는 아마도 산만형이지 않을까?


 승리는 어떤 유형일까? 승리는 누구보다 우선순위가 확실하다. 우리 집에서는 저에게 밥 주고 주로 보살펴주는 내가 단연 선두다. 보리는 집에선 붙어있지 않는 편인데, 승리는 집에서도 붙어있다. 물론 주인에게 충성도가 가장 높은 "치와와"종의 특성일 수 도 있다.


  이 집 이사 오기 전, 집 부엌에서 승리가 아기였을 때 겪은 일이 잊히지 않는다. 좁은 부엌에서도 늘 쫓아다녀 가끔 부딪힐 때도 있어 주의를 했는데, 그날따라 유리냄비 비전에 물을 끓이던 중 뚜껑을 열다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천지를 가르는 듯한 "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밑에 있던 승리에게로 떨어진 것이다. "깨갱 깍~~"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비명을 지르며 아파했다. 기겁을 하고 아이를 만져보니, 발 쪽을 못 만지게 했다. 급히 병원으로 데려가 X레이를 찍어보니 발은 괜찮고 오른쪽 발가락 뼈가 하나 러진 것 같다고 했다. 몸무게가 2kg인 아이의 발가락이니 뭐 방법도 없다고 오른발에 부목을 대고 깁스를 했다.  생각해보면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몇 센티만 뒤로 떨어졌으면 머리를 맞았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비전 뚜껑도 깨지지 않아 더 큰 문제가 안 생겼고 발목 괜찮고 그나마 발가락이 다쳤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그런 일을 겪고 한동안 부엌 쪽엔 오지 않았지만, 제 본능을 어찌하랴. 여전히  승리는 부엌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있을 때는...

 그건 승리의 천성이다. 아무리 "저리 가~~"해도 소용없다. 승리는 그런 아이다.


 뒷산을 내려오는 길은 야자 매트로 깔려 있다. 질기고 촘촘한 매트 사이를 뚫고 살아 나오는 잡초들이 많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잡초지만, 살기 위해 뚫고 나온다. 그 와중에 꽃을 피워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온갖 나무와 잡초가 어우러져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르다. 바닥에 밟히는 풀 한 포기도 자연의 다양함에 곁들인 존재로 살아가는 게 세상이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 샐리 같은, 보리 같은, 승리 같은... 다른 부류의 사람도 많다. 사람을 개에다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성이 있다는 표현이다.(혹여라도 개에 비유한 듯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든 독자분들이 계신다면 사과드립니다. 개가 가족의 일원인 세상에서 저의 사고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언어적으로 소통이 잘 되는 사람도 있고,  때로 표정으로 의사전달을 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부류라고 구분하는 것조차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펼쳐질 하루를 그려보며 생각해 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부모님의 심정은 자식들 모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고 이어가는 우리 역시 그런 진심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라 해도 모양이 틀리고 길이도 다 다르다. 오른쪽 왼쪽도 다르다. 손가락 역할도 다르듯 자식들이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 한 몸에 붙어 있고, 한 뱃속에서 나와도 다르다. 그러니 생긴 대로 저 살아가는 방식대로 보고 그저 할 일이라곤 격려해주고 도와줄 수밖에 없다.


 가까운 가족을 떠나 친구, 이웃,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도 하나같이 다르다. 내 생각이 우선인 세상이라지만, 내 생각과 같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게 세상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잘난 사람도 있고 조금 덜한 사람도 있다. 때로 다른 점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불편함을 끼치는 그 점이라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점임을 명심해야 한다. 늘 보살펴야 하는 다르게 생긴 아이들까지도 제 개성을 충분히 주장하는 세상이다. 나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개성과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로 부딪히며 각자의 주장 때문에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가야 할 길이고 가다 보면 어느새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함께 가는 것이다.


 샐리처럼 앞으로 가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고 보리처럼 옆에서 같이 가야 안심이 되는 사람도 있다. 승리처럼 성질은 급하지만 몸이 감당하지 못해 안고 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급한 성정에 때로 말이 먼저 나와 표정으로 대화하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은 나는, 주변에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누군가의 발걸음에 맞춰, 그렇다고 주위의 아름다운 것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소신 있게 걸어가는 그 사람이 되고 싶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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