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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Oct 12. 2022

백 년의 나이, 무색하도록 열심히 달려 봅니다

일상 속 작은 추억과 즐거움을 주는 아이들


 "아고 배고팠겠다~~ 밥 줄게"

책상에 새 식구가 둘 들어왔다. 자그마한 회중시계와 메모지를 놓을 수 있는 메모 패드 케이스다. 일전에 만년필에 대한 글에서 쓴 것처럼 나는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한다. 특히 문구류를 좋아하는데 오래된 팬이라든지 필기구 등, 어쩌면 어른 장난감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맘에 드는 펜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 개인여행이 아니고 함께하는 경우나 해외 출장 중에는 벼룩시장을 찾아다닐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잠시 짬을 내어 원하는 물건이 있는가 훑어보기도 하는데, 예전보다는 많이 오른 것 같다.


코로나로 여행 가기도 어려워 우연히 옥션을 통해 앤틱 제품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2년 전 맘에 드는 앤틱 실버 샤프펜을 구입해서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손안에 들어오는 묵직한 무게감과 누렇게 바래지는 살아있는 듯한 변화가 느껴져 좋다. 그럴 때면 치약으로 한 번씩 닦아주면 새 펜으로 빛을 발한다.


얼마 전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태엽 감는 회중시계를 하나 구하고 싶었다. 스마트워치도 있고, 시계야 이미 따로 구입할 물품도 아닌 시대지만, 시간을 알려준다는 의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에 의미를 두고 찾아보았다.


앤틱 코너에서는 가격이 다양했고, 몇십 년에서 백 년이 넘은 제품도 많았다. 검색을 계속하다가 "지금도 잘 갑니다"라는 문구에, 가격도 적당한 것 같아 자그마한 회중시계를 주문했다. 버밍엄(Birmingham L 1885) 제품으로 내가 사고자 하는 것의 제작연대는 1900~1909년도 사이라 한다. 예쁘게 새겨진 은 케이스에 에나멜 무늬가 있는 자그마한 회중시계였다. 개인적으로 경매보다 즉시 구매를 선호하는 편이라 가격을 지불하고 2주 동안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키덜트는 아니지만, 키덜트 못지않게 기대감을 가지고 피규어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리고 메모지를 두는 패드도 하나 구입했다.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양각한 실버 플레이트 메모패드 케이스였다. 구입하게 된 결정적인 것은 악사의 발아래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외에서 짬이 생길 때 벼룩시장도 보지만, 가끔 앤틱 샵에 들른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가격이 싸지 않다. 그래서 맘에 들어도 구입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옥션에서 좋은 물건을 보게 되면 오히려 해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싼 경우도 있다. 비행기 타고 가서 찾아다니는 번거로움? 도 줄이게 되고 물건에 대한 조사도 더 잘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앤틱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구입할 생각은 없는 사람이기에 가끔 이렇게 맘에 드는 것을 취미 삼아 구하는 편이다.


기다리던 2주가 지나 물건이 왔다. 여러 장의 사진과 설명으로 묘사한 그대로의 제품이었다. 시계와 메모패드 모두 알코올로 소독하고 치약으로 깨끗이 닦으니, 은 고유의 담담한 광이 났다. 원하는 물건을 품게 된 기쁨을 즐기며 구석구석 잘 살펴보았다. 은 회중시계는 태엽 감는 열쇠가 따로 있다. 하루에 한 번씩 태엽을 감아줘야 시계가 힘차게 돌아간다. 태엽에 의지해 가는 시계... 하루 24시간을 마치 내가 조정해 가며 살 수 있는 느낌을 준다. 작은 희열이다. 태엽을 꽉 감으면 다음날까지 간다. 아마 24시간에 맞춰 조절해 놓은 듯하다. 물론 시계가 아주 딱 맞진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간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백 년도 훌쩍 넘은 넘은 물건이 지금 내 책상 앞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한다.


백 년 전이란 내 삶과는 상관없었던 누군가의 시절이었다. 비록 작은 물건이긴 해도 그 누군가들과 백 년 후의 지금 세상에서 공유한다는 것이 있다는 사실 고마울 뿐이다. 태엽을 감은 시계를 귀에 대면 "째깍째깍" 소리를 힘차게 낸다. 마치 목적지를 향해 힘찬 발걸음으로 달려 나가는 말발굽 소리 같다. 시계를 탁상달력에 걸어두었다. 평면에 두었을 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달리는 소리와 더불어 몸을 좌우로 흔들며 바람을 가르며 "다가닥 다가닥" 달려간다.

오래된 시계는 무생물이 아니다. 몸을 양옆으로 움직이며 흔들거리고 있다. 태엽을 감아주면 마치 막 사료를 먹은 가축들처럼 밖으로 나가려고 비집고 있다. "째깍"거리는 소리는 움직임을 동반한다.

하루라는 쪼개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리는 약해지고, 매달린 시계의 움직임도 약해진다.

나는 다시 태엽을 감아준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거부할 수도 물릴 수도 돌릴 수도 없는 시간, 하루 24시간을 작은 태엽시계는 내가 관장하고 온전히 누리고 갈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을 준다.


잘 조각된 메모패드는 그 가격으로 사지 못하는 한 점의 명화와도 같다. 물론 보는 내가 그리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중세시대, 별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던 악사들의 고달픈 삶이 떠오른다.

그런 그들이 나무 그늘 아래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주인의 음악을 고개 들어 청취하는 강아지의 모습도 풍경에 잘 어울린다. 그들의 표정 속에서 잠시나마 그 시대를 공감한다. 이런 사소한 작은 물건 하나, 감당할 수 있는 조그마한 투자를 통해서 역사를 느끼며 간접적인 즐거움을 얻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일이 잘 풀릴 때도 그래야 하겠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마음이 무거울 때엔 사소한 즐거움을 가지는 것도 꽤 중요하다. 살아가는 매 순간의 연속이 결국 삶이기 때문에... 힘들 때는 조금씩 쉬어가는 여유도 필요한데 그런 여유를 줄 수 있는 것은 취미 생활을 통해서나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두고 보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비실용적 취미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기에 다양한 것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고, 그래서 세상은 더 즐거운 모습으로 곁에 있기도 한다. 소비를 통한 즐거움도 크다고 하지 않은가(과소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좋아하는 어떤 것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순수하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한 가지 원하는 것이 채워질 때 울음도 그치는 것이 아이들이다. 자라면서 얻게 되는 것이 너무 많아, 지키려다 보니 사소한 것에 혹여라도 매이게 되는 자신이 가벼워 보일까 싫어, 어른 같은 어른처럼 현실적이 되려고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동심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문명이 발전하여 앞을 예측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편리해지고 다양한 문화적 변화가 하루가 다르게 접촉해오지만, 태엽 감는 시계가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지금은 만나지 못하는 오랜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오늘 아침도 태엽을 감아 주며 그려본다.

백 년 전 아니 백 년도 더 전에 누구의 시계였는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 시계를 사용했다면 생활이 제법 윤택했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시계를 보면서 시간 맞춰 오페라 하우스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사라지고 없지만 누군지도 모를 그가 쓰던 물건은 흘러서 나에게까지 왔다.


한 세대를 열심히 살아간 그 누군가의 시계가 백 년이 넘도록 수명을 유지하고 먼 나라 내게로까지 와서  간접적인 즐거움을 주게 될 줄을 누군들 알았을까...

앞으로 오랜 후에도 먼저 간 세대의 삶을 잠시라도 추억해 보 누군가에게 여유를 나눠주게 되기를 바래보면서 백 년이 무색하도록 달리고 싶은 말에게 먹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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