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흐린 날은 뭘 하는 것보다 드러누워 책을 보든, tv 시청도 괜찮다. 채널을 돌리다 모 방송에서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 "슈룹"을 보게 되었다. 고전 드라마이면서도 제목이 특이해 관심 가지고 재밌게 보는 드라마다. 이번 주 보지 못했는데 마침 재방송 중이었다.
"슈룹"은 순수한 우리말로 "우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의 아마도 중전(김혜수 역)이 자신의 자식은 물론 다른 귀인들의 자녀까지 다독이고 보살펴주는 든든한 버팀목, 시련의 비가 내릴 때는 우산이 되어 막아 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에 마음에 와닿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고귀인의 아들 심소군(君)이 자신의 역량을 뛰어넘은 능력을 요구하는 어머니의 바람을 이루어줄 수 없게 되어, 목을 매어 자결하려고 하던 것을 중전이 발견하여 생명을 구해준다. 심소군이 깨어나자 중전은 심소군에게 술을 마셔본 적이 있느냐고 물은 뒤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다는 심소군에게 술 마시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술상을 마주한 중전은 심소군에서 술을 따라준다. 술을 계속 따르는데도 술잔은 넘치지 않는다. 심소군이 신기해 하자 중전은 "계영배"에 대해 얘기를 해준다.
"이 술잔은 "계영배(戒盈杯)"라고 한다. 술을 7할 이상 따르게 되면 새어버린다.
사람에게도 "계영배"가 있다.
누구에게나 구멍은 있는 법이다.
스스로 만족한다면 다 채워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숭숭 뚫어져 있는 구멍이 있어서 좋다.
비울 건 비우고 새어 나갈 건 새어나가니까...
그래야 숨통이 트이지..."
갑자기 중전이 나에게 해주는 말로 들렸다. 급히 메모를 한다. 대사는 약간 틀렸는지 모르겠다만...
"계영배"에 대한 교훈이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원하는 것을 꽉 채우려고 사는 삶보다는 비워가는 나름의 철학으로 단출하게 살아가는 편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촐한 전원생활을 택해 살고 있는 작금에도 부딪치는 일들에서 의외로 완강한 스스로를 보며 마음이 무거웠던 때가 있었다. 더불어 살다 보면 어디서든 사람, 주변 환경과의 사이에서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엮어져 있기 마련이다. 아예 혼자 산속에 들어가 살지 않는다면 사소한 일들은 어디서나 발생하게 되어있다. 받아들이는 당사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혹 문제로 이어질 수 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 언저리에는 개개인의 성격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그저 현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때론 사소한 것들이 거슬릴 때도 대충 넘어가지 못하고 신경 썼는지도 모른다. 마당 가꾸면서 잡초를 뽑아내듯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고치고, 반듯하게 해 놓고 가꾸려 했는지 모른다. 같은 날 심은 모종도 자라나는 모습이 다르고, 같은 꽃씨를 뿌려도 조금씩 다르게 핀다. 그럼에도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저 마음이 원하는 모습으로 있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계영배"는 절주를 표방하지만 "가득 참"을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여러 면으로 충분히 고마운 여건 속에 살고 있다. 이미 7할을 넘기고 어쩌면 8할, 9할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눈으로 보이는 어떤, 마음이 원하는 어떤 것들을 더 채우려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있었던 마음속 "계영배"의 관이 막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막힌 관을 다시 뚫어 바람이 통하게 하고, 사소한 일들은 흘려버릴 수 있는 나의 "계영배"를 재정비해야겠다 싶다.
내친김에 대문 옆의 향나무를 전정한다. 무성하게 우거진 잎과 가지를 쳐낸다. 예상대로 겉은 초록잎이 무성하지만, 속엔 마른 가지가 많았다. 향나무도 바람이 잘 통해야 진한 향과 더불어 더 푸르게 자리 잡는다.
반도 훨씬 더 가진 고마운 삶을 다시 찾으며 숭숭 뚫어진 구멍 사이로 코끝에 상쾌하게 스며드는 향나무의 체취에 헐거워진 몸도 마음도 맡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