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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Oct 17. 2022

오늘도 나오길 참 잘했습니다.^^

준비하고 대비하며 다양하게 접해야 합니다.


내일부터 추워진다고 해, 이른 아침부터 보리와 샐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마을 뒷산 언덕으로 내려와 데크길을 걸어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따끈한 라테 마시려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보온병까지 준비해 왔다. 바람이 꽤 불어 아이들 눈에 먼지라도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하며, 나대는 샐리와 뒤따라 오는 보리를 데리고 편의점까지 왔다. 아니나 다를까 소심한 보리는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보리는 안고 샐리를 걸리며 편의점에서 라테 한잔을 뽑았다. 친절한 사장님께서 아이들을 이뻐하며 간식을 주는데, 넙죽 잘 받아먹는 샐리와 달리 보리는 그저 나갈 생각뿐이다. 서둘러 안고 나와 단풍나무가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있는 데크길로 간다.


잠시 쉬며 라테를 몇 모금 마신 후 나머지는 보온병에 넣는다. 아이들 때문에 없는 시간 내어 운동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 덕분에 내가 운동하는 것이다. 아침에 한 시간 정도를 걷다 보면 땀이 훌쩍 난다. 집에서 쉰다면 이런 운동을 할 수 있겠는가. 솔직해져야겠다.


"보리야 승리야 너희들 덕분에 운동하니 고마워~"


사회성 거의 빵점인 보리와 백점을 넘고도 남는 샐리의 성격을 반으로 섞었으면 좋으련만, 어찌 원대로 되겠는가. 되지 않기에 다양함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 다양하니 세상 사는 맛도 있는 것이다. 다양한 세상을 즐기고 싶어, 없는 시간을 내어 이것저것 배워보기도 많이 했다. 음악을 좋아하다 듣고 즐기는 것을 넘어 직접 연주도 해보고 싶어 악기도 배웠다. 스케치를 하다 유화를 배워서 여러 해 동안 그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것 저것 많이 했지만 하나도 내세울만한 것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예전 자기 계발의 대가들이 한 가지에 십 년을 바치다 보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한 얘기도 생각난다.

내 경우엔 해당되지 않은 듯하다. 남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취미로 성공했다고 하긴 힘들 것 같다.


무기력함과 무능력이 안쓰럽다가도 이렇게 자연 속에 있다 보면 결국은 게으름 탓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온전히 노력을 바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인정받는 즐거움도 크지만, 정녕 배우는 과정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아무리 한 우물을 깊이 파도 내가 즐겨하는 취미의 대가들 이미 세상에 넘쳐 난다. 어찌 나의 능력이 그들을 넘어서겠는가...


그래도

기왕이면 배우고 늘어가는 보람 이해하며 좋은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더 큰 즐거움이지 않을까? 앞으론 잘하려 애쓰기보단 마당 가꾸는 것처럼 부담 없이 즐기며 취미도 키워보자 결의를 다져본다.


취미를 넘어 늘 곁에서 함께하는 소중한 벗 같은 존재 있다. 산책하는 즐거움, "자연과 동화되는 생동하는 걷기"를 선물하는 보리와 샐리, 승리가 있다.

그리고 어릴 때의 소망이었던 작가의 꿈을 이루게 해 준 브런치가 있다. 물론 브런치를 하기 전부터 글을 쓰기를 멈춘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 언제 어느 때나 쓸 수 있고, 읽어주는 독자들과 함께 펼칠 수 있다는 기쁨과 고마움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틀 전 화재로 또 다른 세상의 혼돈을 보았다. 브런치도 여파를 피해가진 못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혜택을 누리다 살고 보니, 마치 처음부터 당연시하게만 여겼던 일들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보게 되었다.

아무 때나, 마음대로 글을 쓰고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었던가...

브런치의 글들을 모아 책도 두권이나 출간한 기쁨도 얻지 않았던가.


하지만

모든 것을 봉사로 제공하는 완벽해 보이는 온라인의 축복들도 갑자기 혼돈으로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을 보니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복구되었으나, 앞으로는 꼭 복사를 해둬야겠다는 가르침을 남겨주었다.


이리 마음을 먹고 보니,

잘하지는 못해도 이런저런 취미를 가진 것도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싶을 때는 그리고 연주하고 싶을 때는 연주하면 된다.

나의 작은 정성이 가족들과 지인들과 이웃에게라도 좋은 위안이 되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지속적으로 글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브런치와 함께, 자라고 성숙해가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의도 다져보며 부족한 글을 읽어주는 독자분들께도 더 감사한 마음으로 교감해 가야겠다 결심도 해본다.


오늘도 나오길 참 잘했다.

제법 세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아이들은 즐겁게 걸었고, 마음을 톡톡 두들겨 다시 추슬러보는 내게도 고마운 아침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른쪽 왼쪽으로 정답게 걷는 보리와 샐리




p.s. 화창한 오늘 프로방스의 하늘이 생각납니다.  오페라 춘희중의 아리아 "프로방스, 내고향으로 (Di Provenza il mar, il suol)" 를 바리톤 레나토 브루손(Renato Bruson)의 음성으로 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XK8Fsu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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