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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an 26. 2023

글쓰기에도 장비빨은 필요하구나...


몇 년 동안 집안 가구를 그대로 두고 살았다.

변화 없이 날 것 그대로...

사실 나는 집안 리모델링을 자주 하는 편이다.

가구를 새로 들이고 치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구 이동 배치등의 변화를 통해 계절을 느끼기도 하고 식상한 분위기도 새롭게 해 본다. 가끔씩 뒤집을 때면 식구들은 저런 일을 왜 할까 싶은 눈초리로 별로 반기지 않는다. 쉬는 날의 평안을 빼앗기도 하니까...

뭐라도 변화를 주고 정리하고 나면, 우울할 때 맛있는 음식, 특히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작은 희열감도 느낀다. 그런데 마당 있는 집으로 와선 마당에 신경 쓰느라 그랬는진 몰라도 리모델링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다.


새해맞이, 새 결심은 연례행사처럼 작심삼일作心三日일지라도 세우기 마련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니 작심일일作心一日, 매일매일 새롭게 결심하고 하루라도 지켜낸다면 그만큼이라도 실천하는 것 아니겠는가"까지... 매년 세워왔던 목표를 그만 접고 "하루하루 충실히 지내자"로 거창한 연례행사는 접은 지 몇 해 된다.

그러다 올해는 뭔가 변화를 주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마 눈이 쌓여있는 마당이라 마당보단 집안을 더 보게 되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새해 New Year"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저 않아 있는 마음이나 몸에, 움직이는 보이는 변화를 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 몇 가지 결심을 세워 보았다.

그중 하나는 매주 2편 이상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브런치작가님들은 주기적인 글 올리기 상당한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작년에 두 권의 책을 발간했으니 올해도 2권의 책과 한 권 이상의 전문서적을 써보는 것이다. 쉽지 않을 일임을 안다. 더군다나 소심한 성격에 지면으로까지 다짐을 해보게 되니 사뭇 염려도 되는 일이다 마는... 그래서 "의무사항이다"로 스스로에게 주입시켜 본다.


"그럼, 먼저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구나!"

우선 "글쓰기와 읽기에 몰두할 수 있는 지금보다 나은 환경부터 조성해 보자" 작정하니 서재를 정비해야겠다 싶다. 지금은 시간 될 때마다 스마트폰과 거실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다.

사실 크고 아름다운 앤틱 책상을 여러 해 전에 구입했는데, 맘먹고 샀던 책상이 너무 커 방으로 들이지를 못하고 다른 곳에 두었다. 글 작업을 많이 하려면 관련서적도 봐야 하기에 이참에 방으로 들이기로 했다.

악기나 그림을 배울 땐 장비 먼저  준비하면서 글작업엔 별다른 장비 생각은 안 한 것 같다.

어디든 펜과 노트북, 그리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글 쓰는 작업은 때론 신성한 일이다. 마음 다잡고 써야 할 때도 많다. 적합한 공간에서 자세부터 다잡아 나름의 성의를 표현하는 것도 어쩌면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 글쓰기에 대한 작은 예의"지 않을까. 물론 아무 때나 무엇으로든, 표현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나만의 공간으로 구분해서 대우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옮겨야겠다 싶다.


손님방으로도 쓰는, 책장이 있는 작은방을 서재로 꾸미기로 했다. 커다란 창문이 있는 서재는 로망이기도 했기에 줄자로 크기를 재고 창문옆으로 책상을 옮긴다. 책장이 있는 방에 책상을 들이니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맘에 든다. 넉넉한 공간에 우아하게 자리 잡지도 않았고 잡다한 짐도 많지만 책상을 들이니 구분된다.

더 좋은 점은 창문옆이라 잠시 의자에 고개 젖히고 쉴 때면 바깥 풍경이 보인다는 점이다.

멀리 다리도 보이고 강도 살짝 보인다. 봄이면 노란 산수유와 분홍 살구꽃도 보일 것이다. 자목련꽃도, 감나무 잎도 잘 보일 것이다. 흰 눈이 날리면 눈이 보일 것이요 봄비가 부슬거리면 차 한잔을 마시면서 봄비를 맞을 수 있겠다. 옮기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확실히 장비빨이라는 말이 맞다. 저녁이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소파에 앉아 담소하며 tv 시청을 즐기곤 했는데, 자연스레 서재로 들어오게 된다. 책상 위에 이것저것 너저분하게 널려있어도 부담 없다.

나는 책상을 말끔히 정리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잡동사니도 많이 둔다. 책상을 옮기면서 책상밑에 있던 가로 책꽂이에서 액자박스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2019년도 스페인에 갔을 때 프라도미술관에서 구입한 나무액자다. 아니 나무액자가 아니라 두께 3.8센티 길이 19센티 정도의 정사각형 목재에 프린팅 된 나뭇결이 살아있는 액자다. 두께가 있어 세울 수도 있고 벽에 붙일 수도 있다. 산 것을 넣어두고 잊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한 번씩 뒤집으니 숨어있던 좋은 물건들도 찾을 수 있다.

액자 뒷면에 있는 작가이름 Goupil 찾아보니 프랑스 출판인으로 1866~1867 "사막에서"라는 제목으로 두 마리의 개(휘핏?)를 데리고 가는 누비아인을 찍은 사진이라고 나온다. 내가 산 액자는  이 사진을 목재에 프라도 미술관에서 판매용으로 프린팅 한 것이었다. 개와 함께 있는 분위기가 좋아  구입하면서  당연히 그림이라 생각했는데, 사진이었나 보다.

그루미 한 날씨와 잘 어울리는 잿빛풍경이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작품이다. 인생 사막에서 구도자인 나를 잠시라도 돌아보게 만드는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다.


그 밖에도 여행 시에 구입한 작은 기념품 몇 가지를 둔다. 나의 수집품? 은 그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이다. 벼룩시장을 즐기기에 올드한 소품이며 명품은 더욱 아니다. 좋아하는 개에 관한 것이나 문구류다. 오늘 서재를 꾸미다가 잊힐뻔한 멋진 작품을 발견하게 되고 책상 위에 두고 보게 되니 잘 어울리고 좋다. 이것도 시도했으니 얻게 된 것이다.


책상은 집중에서 작업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관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점點들로 분산된 우연과 현실 꿈과 과거와 미래를 선으로 이어주는 곳이다. 

역시 한 점에 불과했을 애장품을 두고 시간을 초월하는 감정에 젖어보기도 하는 이유다.

좋은 점또 하나 있다. 아예 서재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게 되니, 치대는 아이들도 거실 제자리에서 잠자는 시간이 많아진다. 우리 집 아이 셋은 노견으로 접어들었기에 낮잠도 많이 자야 하는데 저녁에 주로 거실에서 생활하다 보니 쫓아다니느라 잠을 잘 안 잔다.

가끔씩 서재로 들어와도 안아주지 않으니 치대다간 나간다.

" 아! 이래서 뭘 하려면 장비빨도 중요하구나"

새해 들어 다시 얻은 첫 실물교훈이다.



무쇠강아지와 이번 교토여행에서 구입한 도자기 작품 강아지, 다섯 생명의 표정이 다채롭다.

유리판에 흔들리며 투영된 사막에서의 누비아인의 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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