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조촐한 시집
이래 봬도 당당한
무, 당당 무입니다!
by
opera
Nov 16. 2022
아래로
9월에 심었던 무를 캤다.
초록의 몸뚱이가 자꾸 올라와 속은 얼마나 더 컸을까
궁금한 마음에 비 온 후
얼기 전에 뽑기로 했다.
열개는 심은 것 같았는데,
지난주에 하나 뽑아 먹었으니 아홉 개는 돼야 싶은데...
세어보니 일곱 개였다.
이상하다 싶어 무 심은 데를 다시 보니 무청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하나를 잊었구나"
무청을 잡아당기다 눈을 의심한다.
무청은 있는데,
이 아이는 산삼 뿌리가 되었나...
저렇게 그대로 있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같은 땅에서 같은 물먹고 살았는데
옆에 있는 무에게 다 뺏긴 건진 모르겠다만,
여덟 번째 무는
제 몸뚱이의 몇 배나 되는 무청을 이고도
제 몸뚱이보다 수백 배 더 큰 무 옆에서
쪼그라든 기색 하나 없이,
당당히 살아 있었다.
어차피 누군가의 밥상에 올려질 무 아닌가!
아마도 저는 그리 끝내고 싶진 않았나 보다.
밥상 위의 반찬 무보다는,
바람처럼 한 세상 당당하게 왔다 가겠다는
당당 무로 살고 싶었나 보다.
무로 태어나 무구실도 못
할 무지만
당당 무는,
갈수록 늘어지려는 인간에게
"웃지 마라!
비교하지도 마라!
너는 나처럼 끝까지 견딜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keyword
무청
비교
존재
107
댓글
10
댓글
10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opera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저자
정원 가꾸며 흙에서 배워가는 자연 속 일상의 다양함과 여행으로 얻는 인문기행기를 쓰고 그리며, 순간의 이어짐을 소중히 여깁니다.
구독자
1,277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ktx를 타고 5. 가을 산
낙엽落葉이야기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