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에 사그라든 수국...
어제 아침 꽃샘추위는, 전 날 심은 수국(水菊)을 얼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침에 괜찮겠지 하고 나가보니, 아! 수국은 그 많고 화려했던 꽃망울을 수그린 채로 얼마나 떨었는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깻잎쌈으로도 손색없었던 싱싱한 잎은 얼어 늘어져 있었습니다.
전날 지인과 장에 나가 매발톱 4 개와 제라늄 4 개와 막 피기 시작한 수국이 너무 예뻐 거금을 주고 하나씩 사 온 것이었습니다. 햇살 잘 드는 앞 정원에 제라늄을 두 개 심고 내일 꽃샘추위가 온다고 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개는 온실 안에 넣습니다. 매발톱은 돌담아래 매발톱이 많이 심겨있는 곳에 더 심어 줬습니다. 여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염려는 됐지만, '영하 1도 정도라는데 괜찮겠지 뭐~' 내친김에 수국도 상추온실 앞에 심었습니다. 알알이 꽃이 막 피기 시작한 수국은 참 예뻤습니다. 그날따라 왜 사진도 안 찍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저녁에 바람이 찬 것 같아 신경 쓴다고 거둬두었던 잠복소로 적당히 싸 주기까지 했습니다.
제라늄은 얼까 봐 두 개는 온실 안에 넣어두기까지 했지만, 심은 아이도 멀쩡했습니다.
'수국(水菊)한테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말 그대로 물을 좋아하는 수국인데, 영하로 내려가면 당연히 얼 수 도 있을 텐데...' 주인잘못 만나 화려한 절정기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얼려 버린 미안함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다행히 속까지 얼지는 않아서 언 잎을 잘라내고 정리를 합니다. 싱싱했던 수국잎은 청과물시장에서 물러버린 채소냄새를 풍기며 전날의 화려했던 수국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퇴색한 모습입니다. 물론 꽃을 다 피우고 나면 초라하게 말라버리겠지만, 피기도 전에 이런 수모를 당한 '스스로'도 너무 억울한지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어제저녁에는 미니 온실을 씌우고 속에 짚으로 둘러주었습니다. 그 전날 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전날엔 왜 미니온실생각을 못했을까'
못난 인간은 자책해도 푸성귀냄새를 풍기는 수국은 잃은 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남은 가지와 뿌리를 건강히 키워내도록 애를 쓸 것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비우면서 자연과 교감하려고 마당 있는 집을 택했건만, 가꾸면 가꿀수록 더 가꾸고 싶은 욕심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대로'를 두고 보지 못하던 '열심'이 왜 다시 부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없이 돌아가던 일, 지속적으로 차질 없이 해오던 일도 갑자기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도 없이 그냥 그리되어 버린 일입이다. 잠시 전으로라도 돌이킬 수만 있다면 하지 않았을 일 말입니다. 왜 그런 일은 가끔씩 일어날까요?
평소의 습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질이 급해 당장 심었기 때문이죠. 물론 '꽃샘추위라는데 미니온실에 며칠 넣었다가 날 풀리면 심을까'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닙니다. 몇 해 전에 꽃이 핀 주황목단을 사 와 심고 난 며칠 후 꽃샘추위로 잃은 경험도 떠 올렸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선 '괜찮겠지 영하 1도 라는데... 빨리 심고 정리하자...' 뭐가 그리 급한지 말입니다. 당장 어디 갈 계획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잠시라도 꼼지락거리지 않으면 시간이 아까운 전형적인 현대인의 성인병이 아직도 터줏대감처럼 들어앉아 있습니다.
오늘 아침 미니 온실을 열어보니 푸성귀냄새를 풍기면서도 온화한 기운이 돕니다.
'그러면서 배우고 사는 게 아니겠어요?'
뭐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무의식의 자아 속에서 긴 세월 동안 자리 잡아 열심히 적극적으로 살게도 했지만, 돌아보며 쉬어가는 삶의 여유까지 잠식하기도 했지만 고맙게도 흙을 밟고 마당 가꾸며 생활은 본래 가지고 살았어야 할 '여유와 평안'을 여러 방법으로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인생도 '한방에 훅' 갈 수도, 올 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평소의 습관과 행동의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힘으로 방향을 틀 수 없었던 일이 대부분입니다. 마당은 '너도 잘못한 것은 없다'는 위안으로 용기를 줍니다. 부딪힐 땐 피하지 말고 맛닥뜨리며 받아들일 때도 있어야 합니다. 다쳤지만 살아있는 수국이 남은 봄날동안 환하고 아름다운 꽃을 알알이 피울 것처럼 말입니다.
정원그림일기에 올렸던 수국의 원래 모습...
오늘 아침 미니온실 안의 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