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ra Apr 04. 2023

봄은, 한 뼘 마당에서도 생명을 나눕니다.


마당을 돌본다지만,

마당에게 돌봄을 받는 아침입니다.

어제가 언제였나 싶게 하룻밤새 변모하는 마당입니다.

작고 큰 여린 생명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현실은

욕심으로 놓쳐졌던 소소한 일상을 일깨워 줍니다.

때론 백 마디의 말보다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여유로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고마운 가르침을 줍니다.


한 뼘 작은 공간이라도 놓칠세라 자기만의 색으로

함께 노래하는 생명의 향연이 펼쳐지는 봄마당입니다.

눈에 보이는 빨갛게 피어난 튤립,

이제 막 봉오리를 터트리려는 노랑 나리꽃,

부지런했던 하얀 수선화는

남은 계절을 보이지 않는 미래에게 바칠 요량으로

짧았던 한 생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의 어린 산딸나무는

지난겨울 모진 추위에도 송골송골 알 품고 견디더니

이제 막 입을 벌리고 내 보내려 준비 중입니다.

무심해 보이는 대지 속에선

제피란서스와 백합...

굳어진 몸으로도 견딘 구근이 움트고 있습니다.


보이는 생명과 보이지 않는 생명들은

생명의 맛을 알기에

봄의 절정을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새로운 얼굴도, 떠나는 얼굴도 뭔가 익숙한 모습입니다.

한 해를 기다렸던 짝꿍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교감했지만

이제 보이는 세상에서

짧은 기간 동안 얼굴을 맞대며 정을 나눈 후면

 다시 긴 동면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봄에는

봄이 주는 생명(生命)으로 충분합니다.

어쭙잖은 글로

생명의 봄을,

봄과 함께 하는 생명들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오는 꽃이던 가는 꽃이던

소중히 볼 수 있는 마음만이라도

아직은 놓치지 않고 있음에 고마울 뿐입니다.


봄이라서

봄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부족한 작가에게

봄이기에

글도 사진도 표현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활짝 벌린 가슴으로 안아주며 생명을 나누어 줍니다.



만남과 이별이 하나처럼 어우러진 마당 한 귀퉁이

금낭화가 어느새 꽃을 맺혔습니다.

누구도 모르게 맺힌 하얀 목단꽃몽오리

어느새 활짝 자라 고개 숙인 할미꽃

매거진의 이전글 "한 방에 훅" 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