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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22. 2023

어머니 꽃, 모란이 활짝 피었습니다.


 어제 오후에 모란꽃이 만개했다. 돌담아래 하얀 모란은 얼마 전부터 커다란 꽃송이를 품고 있었다.

오전에 풀을 매고 마당정리를 하며 보니 모란이 막 피려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벌어질락 말락 습자지처럼 투명한 몸뚱이를 바람에 살랑거리면서...

'곧 피겠구나'

'피긴 피겠지만 며칠이나 가겠니...'

오후에 보니 뜨거운 햇살아래 어느새 활짝 웃고 있었다.

분홍빛이 살짝 도는 동그란 얼굴...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고 하지만,

처음 핀 마당의 모란에서

빨래터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함박 웃는 소박한 시골 아낙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왜일까...

간지러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란의 얼굴,

이리로 저리로 흔들리며 일주일 보이고 말 얼굴이지만, 일 년을 기다려 만났어도 서로에게 아깝지 않게 풍요로운 마음과 추억으로 적셔 줄 것이다.   

'마당 가꾸기 마음 가꾸기 정원일기'를 애독해 주시는 어느 독자분이 "이젠 사진보다 그림을 볼 것 같다"는 과찬을 해 주셨는데 이 환한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워 사진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어제 쓴 정원일기에도 그림을 그려 넣었다.


 마당생활을 하기 전에는 '모란'이란 이름으로 그저 노래 속에 나오는 꽃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제일 먼저 심은 것이 '모란'이었다. 두 그루를 심었는데, 처음에 지줏대를 해 주지 않아 등이 약간 굽었다. 이미 굽어진 등을 강제로 펴고 싶진 않아 지줏대로 받쳐주었다. 등은 굽었어도 나이 든 아이답게 몸이 휠 정도로 많은 꽃을 맺고 피운다. 모란은 유월을 안고 피는 꽃인데, 사월에 얼굴을 보였다. 인간이 저지른 잘못으로 생기는 기후변화의 덕으로 작년에도 사월 말에 피었는데 올해는 며칠 더 일찍 핀 것이다.


 모란(목단) 꽃을 보면 일찍 떠나신 어머니가 많이 생각난다. 하얀 모란을 무척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막 피어난 모란처럼 젊은 모습 그대로 나의 뇌리엔 투영되어 있다. 모란꽃을 좋아하셨고, 자수를 잘 놓으셔서 옷 덮개와 여러 천에 모란꽃 수를 놓았던 것이 기억난다. 모란을 키워보니 내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많은 어머니들이 좋아한 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지금에야 온갖 꽃들이 다양하지만, 예전엔 모란만큼 봄을 맞이한 기쁨을 현실로 느끼게 해 준 꽃도 별로 없었을 것 같다. 물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사꽃, 산수유 등... 봄꽃이야 많지만, 제얼굴하나로 '봄이다'를 완벽히 보여주는 꽃은 모란꽃이 아닐까 싶다.

힘들었던 시절 어머니들의 춥고 힘들었을 겨울 생활을 지나고 조금은 나아지는 계절의 삶을 시작할 때 활짝 웃으며 '올해도 열심히 살아보세요'라고 덕담이라도 건네주는 꽃이었을 것이다.


 모란꽃은 어머니 꽃이다.

모란은 제가 품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할 정도로 커다랗게 꽃을 피운다. 그리고 비록 오래 버티진 못하지만, 여느 꽃보다 벌들이 많이 찾아와 귀찮게 해도 제 몸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꽃이 진 후에는 가을이 될 때까지 씨앗을 품고 키워간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떤 꽃보다 튼실한 검은 씨앗을 아낌없이 뿌린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모성본능을 모란에게선 볼 수 있다. 오늘 처음 꽃을 피운 아이도 처음 심은 아이의 씨앗으로 키운 모란이다.


 굽어진 몸으로도 송이송이 많은 흰 꽃송이를 품고 있는 목단을 보면 때론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하나라도 더 품고 살려고 노력하는 자식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우리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다.

오직 내어주기만을 위해서 한 해를 견디어 온 몸뚱이는 이제부터 꽃을 보이고 벌들에게 꽃가루와 꿀을 나눠주며 씨앗을 품고 뜨거운 여름 햇살을 견디며 익혀가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배울만 하면 배워 보렴'이라고 말은 못 해도 몸으로 베풂과 나눔의 희생이 미래를 열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당에서의 일상은 되풀이되는 순간 속에서도 같은 모습과 이야기는 없다. 하루하루 새롭고 충만한 마음으로 교감을 나누다 보면 부대끼는 일상의 소용돌이는 견딜 만해진다. 어머니의 웃으시는 모습이 투영된 하얀 모란이 활짝 웃으며 따라 웃어보라고 하는 싱그러운 하루다.




p.s.  김용균시 조두남곡의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가곡을 소프라노 곽신형 님과 테너 박세원 님의 목소리로 들어 봅니다.


"모란꽃 피는 유월이 오면

또 한송이의 꽃 나의 모란

추억은 아름다워 밉도록 아름다워

해마다 해마다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또 한송이의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행여나  올까 창문을 열면

또 한송이의 꽃 나의 모란

기다려 마음조려 애타게 마음조려

이 밤도 이 밤도 달빛을 안고 피는 꽃

또 한송이의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https://www.youtube.com/watch?v=SQaIt4ZkCrg

https://www.youtube.com/watch?v=CUdRhNbT3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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