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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Dec 01. 2023

한방에 훅

11월 하순의 어느 날 단상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

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라도...

어제오늘 영하로 떨어진다고 했는데, 영하 1,2도 정도야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뒷마당 텃밭은 별생각 없이 뒀다. 간 밤에 얼마나 추웠는지 상관없이 잘 자고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니 이른 아침이라 날이 차고 데크 위로 성에가 꼈다. 예보보다 훨씬 추웠나 보다.

서둘러 뒷마당으로 간다.

"아뿔싸"

귀하게 키워왔던 배추가 얼어 있었다. 제 몸뚱이까지 밀고 올라왔던 무 잎도 얼어버렸다.

뒷 텃밭은 서향이라 아침엔 해가 잘 안 든다. 그래서 추운 날엔 더 추운 곳이기도 하다. 당장 김장을 할 생각도 없었고, 지난번에 배추를 한번 솎아 시래기를 만들었기에 날이 추워진다고 해도 특별히 어떤 조치를 할 수 없었긴 했지만, 막상 얼어버린 배추를 보니 맘이 좋지 않았다.


이제 가을은 갔고 진짜 겨울이 온다는 생각에...

올 겨울은 특히 더 춥다니 욕심으로 한껏 심어둔 마당의 초목들은 어찌 보호해 줘야 한다는 아쉬움에 염려가 앞선다. 얼어버린 배추에 난감해하다, 지나쳤던 쌓인 낙엽으로 눈이 간다.

"세상에"

어제까지 "우리 집 단풍잎이 올핸 더 예쁘네"라고 자랑까지 했던 단풍잎이 소복이 떨어져 앉았다.

대봉을 따고도 남아있던 감나무잎은 누가 훑기라도 한 듯 쏟아져 내렸다.

"한 방에..."

하룻밤 확 추워진 날씨에 마당 풍경은 확 달라져 버렸다. 여러 번 뜸 들임도 필요 없다.

알뿌리의 광합성을 돕기 위해 자르지 않고 뒀던 백합 대들도 누런 잎을 떨어뜨렸고, 다가오고야 말 겨울을 깔끔하게 한 번에 인정하는 단풍나무도, 감나무도 하룻 밤새 몸을 "훌훌"털었다.


인간이 주저주저하며 밍그적거리는 일들을 이 아이들은 단칼에 정리해 버렸다.

결단을 내려야 할 일들은 미련 때문에 시간을 끌면 오히려 추해 보임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마당 스승들은 "살다 보면 일은 생기기 마련이고 생긴 일들은 대부분 피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다.

그럴 땐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아침의 단풍나무와 감나무가 말하고 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내 보내야, 다가 올 미래로 채워 갈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봄"을 받아들이기 위해 "겨울"이라는 교두보를 넘기 위한 조치는 필연이기에, 감나무는 단풍나무는 저와 함께 견뎌왔던 제 살들을 버린 것이다. "제가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젠 당신이 할 일을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벌거벗은 몸뚱이를 짚으로 포근히 감싸 겨울을 건너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추워진 날씨는 따뜻한 햇살을 기고 있는 샐리와 보리에게도 지난봄, 여름과 다른 산책을 즐겨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듯하다.




p.s. 해마다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김재호 님 시 이수인 님 곡의 고향의 노래를 들어봅니다.


테너 박인수 님

https://www.youtube.com/watch?v=d-ZJRZ57M-c

소프라노 강혜정 님

https://www.youtube.com/watch?v=kQlq64SUE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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