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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29. 2023

부동전을 아십니까?

 몇 달 만에 검침원 아주머니가 수도검침을 하러 오셨다. 겨울 동안 인정검침을 하기 때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별일 없으셨죠?"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검침을 하신 후에 "올 겨울에 물을 많이 쓰셨나 봐요?" 말씀하신다. "네? 다른 해와 다름이 없었는데요." "몇 달 새에 평소보다 130톤이나 더 쓰셨어요. 요금이 23만 원 정도 더 나올 것 같아요..." "뭐라고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수도 계량기 쪽으로 갔다.  791톤, 보기에도 똑바른 숫자가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검침한 11월 초 615톤이었는데, 평소에 쓰던 양으로 고지한 인정검침량을 빼면 4개월 동안 추가된 것이 130톤 정도라는 것이다. 너무 놀라 말이 안 나왔다.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뭐가 잘못된 것 같아요."


"저희 집 이렇게 나온 적 한 번도 없잖아요..." "맞아요. 사모님 댁은 항상 일정하게 20톤 아래로 사용하셨는데... 저도 황당하네요;;"


 검침원께서도 함께 어리둥절해하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주려 애쓰셨다. 많이 쓰지 않았다는 내 말은 적극적으로 믿는 느낌이었으나, 수도 계량기에는 쓴 물만큼만 계량되게 되어있으므로 어디선가에 물이 흘렀기 때문에 숫자가 올라간 것이라는 얘기를 하셨다.


 집안에선 누수의 흔적이 없었으니 마당에 있는 수도를 틀었다 잠갔다 해본다. 틀면 계량기가 돌아가고 잠그니 계량기가 멈춘다. 검침원께서는 "마당수도도 이상 없는 것 같다" 하시는데, "그렇다면 계량기 이상일지도 모른다"면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워낙 추운 곳이라 매서운 추위가 오기 전에 계량기를 잘 싸놓고 봄이 되면 열어 확인토록 한 인정검침(내 생각에는 검침하시는 분의 어려움도 덜어드리고 계량기도 보호하기 위해 한 것이었지만...)때문에 오히려 큰 피해를 본 것 같아 속상했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만약 인정검침을 하지 않았다면 매달 확인해서 문제가 생긴 달에 해결할 수도 있었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지랖 넓은 성격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검침원께서는 자신도 매월 검침하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면서 일정 부분 부담하시겠다고 하신다. 


 "아녜요 문제가 되었다면 저희 집에서 해결할 일이지요" 말을 해 놓고도 인정검침한 것을 후회했다. 더 자세히 알아보고 할 것을... 아무튼 정말 믿기 힘들다고 계량기도 확인해야겠다 하니 검침원 아주머니도 수도국에서 나와보시도록 하겠다고 했다. 


 오후에 수도국에서 방문했다. 그분도 마당수도를 틀어보시고는 "누수는 아닌 것 같은데요" 이 분은 검침원 아주머니보다 더 단호하셨다. 물을 그만큼 썼기에 나왔다는 것이다.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그분에게 답답함을 호소하였지만, 사실 그분의 입장에서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계량기의 숫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긴 했다. 계량기의 이상을 물어보니 혹여라도 계량기의 숫자가 잘못 넘어갈 경우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 이런 숫자가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찾아본 것이 생각나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수도를 차단하고 다시 틀어보기로 했다. 원수를 차단하고, 마당수도꼭지와 부동전까지 잠갔다. 다시 원수를 틀고 부동전을 트니 물소리가 약간 났다. 마당에서 물 쓸 때는 부동전에 연결된 마당수도꼭지를 틀고 사용하는데, 마당수도꼭지를 잠가놓고 부동전만 틀었는데 이상하게 물소리가 나는 것이다.


 "어? 물소리가 나네요" "그러네요" 물소리가 나는 상태로 계량기를 확인하니 제일 적게 돌아가는 파란 바늘이 움직인다. "아! 이거 누수 맞네요. 누수네요"  수도국에서 오신 분이 말씀하신다. 마당수도를 틀지 않아도 부동전이 잘못 잠겨있을 때 아마도 깊이 있는 패킹이 터져 조금씩 물이 새어 나온 것이었다.  "기술자 불러서 부동전 교체하시고 공사 사진 찍고 공사계획서 복사해서 서류작성해 제출하시면 평상시 사용량을 제외하고 누수된 양의 50% 정도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두 달 안에 공사하시면 됩니다." 친절하게 설명하시고 가셨다. 부동전 몇 년 전에 새로 공사한 것인데, 황망하게 망가져 버렸다니...


 흙을 밟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삶은 녹녹지 않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가꾸며 살기는 하겠지만, 특히 겨울엔 난방과 초목관리로 어려움이 많다. 그중에서도 마당생활의 필수품인 물을 공급하는 수도는 중요한데 웬만해선 얼기 때문에 "부동전"이라는 특별한 수도장치를 대부분 한다.


 부동전(부동급수전)은 보통 1미터, 1.5 미터의 긴 수도연결관으로 매립한 후에 외부수도와 연결해 사용한다. 겨울에 물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부동전 밸브를 잠그고 외부 수도는 열어두면 부동전내부에 남아있던 물이 회수되면서 부동전 안이 비어 동파되지 않도록 외부에서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급수전이다.


 겨울에는 마당에서 수도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으므로 부동전 밸브를 잠가두고 나머지 계절에는 부동전 밸브는 열어둔 채로 연결된 수도만을 틀고 잠그면서 물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 확인해 보니, 부동전밸브에 이상이 생겨 잠가둔 상태에서 조금씩 누수된 것 같았다. "부동전"은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도구인데 너무 꽉 조일 경우 간혹 아래에 있는 밸브가 터질 수도 있다고 한다. 혹은 어떤 이유로든 부동전 아랫부분 퇴수구가 제대로 막히지 않아 잠긴 상태로 계속 누수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상태의 문제점을 정확히 기억해 내기가 힘들었다. 하기야 기억해 낸들 뭐가 달라지랴. 하루라도 빨리 고치는 방법밖엔 없다. 이렇게 누수가 계속되면 이번처럼 수도요금이 과다하게 부과되거나 지반이 약해지는 문제도 생길 수 있으니 빨리 고쳐야 한다. 몇십만 원 이상의 큰돈이 들어가고 감면을 받는다 치더라도 10만 원 이상의 수도세도 더 내야 하는 형편이지만, 원인을 알고 나니 답답한 마음은 풀렸다. 바로 동네 철물점 사장님께 부탁드려 다행히 이튿날 공사를 잘 마쳤다. 예상했던 대로 상당한 경비가 들어갔지만, 부동전 교체를 하면서 수돗가 시멘트 작업을 너무 깔끔히 잘해 주셔서 공사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길냥이들이 밟지 않도록 이틀 동안 철망을 두르고 잘 관리해서 마당 생활에 꼭 필요한 야외 수돗가를 재정비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우리 인간들에게 꼭 필요한 호흡, 바쁜 삶 속에서도 아주 잠깐의 트임, 숨구멍, 바람구멍이 있어야 부드럽게 살아갈 수 있다 생각했지만 무생물인 부동전에게 조차 '약간의 여유?'가 필요할 줄은 몰랐다. 생명의 주역들이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무생물의 조연들에게도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때론 한 박자 느리게 서로 공감하며 어울려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마당과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다시 배우게 된다. 

 

문득 어느 날 불쑥 찾아올지도 모를 인생 겨울에 얼지 않도록 든든히 지켜줄 부동전은 있는가는 생각도 든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부동전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요즘 살이에 꼭 필요한 경제적인 면에서는 어떨까? 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어쩌면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 인생 동면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너무 애달프게 조이지 말고 부동전처럼 마음으로 함께 하는 동행이 있는 한 "인생의 봄도 다시 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다져가면 좋겠다는 교훈도 얻는다.





p.s. 헤드라잇과 동시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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