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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Feb 16. 2024

"찰깍" 하려는 순간,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이른 아침, 이라고 해도 아쉬울 것 없는 포근한 날들이 이어진 며칠, 동네 돌다 욕심이 생겨 뒷산 언덕을 내려와 강변길을 산책하기로 한다. 강아지들을 떼어놓고 나오니 발걸음도 가볍고 늘 걷던 길이지만 새롭다.

떠나려는 겨울이 아쉽기라도 한 듯, 엘레강스한 강은 고요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회색빛 무대를 펼쳐 지저귀는 새들을 맞이하고 있다.

강변 데크길 중간쯤 내려오다, 보고 거두기가 아까워 한 폭의 수묵화로도 남겨둘 양 사진을 찍으려고 폰씨를 내 들었다. 그런데 찰칵하려는 순간 폰씨는 그만 내 손을 벗어나 평소 가보고 싶었는지(?) 테크 난간아래 숲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뿔싸 ~~ 이걸 어쩌나"

데크 길 아래는 제법 험준한 내리막 언덕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보니 겨울이라 낙엽과 마른 가지 덤불이 쌓여 아래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폰씨는 약이라도 올리듯 초록빛 자태를 뽐내며 덤불 안에 누워있었다. "이걸 어쩌나.."

걸어온 길도, 가야 할 길도 거의 반반인 곳에서 우선은 어찌 내려가야 할 것인가를 찾아야 했다.

난간이 제법 높은 데다, 난간을 넘어도 숲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어찌 될지 모르니 굴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가다 보니 "개인소유지, 출입금지"하고 난간 쪽에 바짝 천으로 막아놓고 표시해 놓은 곳이 보였다.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천막을 넘어 마침내 난간 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넘어와보니 난간바로 위에서 보던 것보다 더 경사진 곳이었다. 강변까지 이어진 숲, 경사진 곳에 철 기둥을 세우고 데크길을 놓은 것이다.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위에서 뛰어내릴 생각하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 내려온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둥옆에 남은 길로 가야 하는데, 폭이 너무 좁아 제대로는 걸을 수 없었다.

"아! 119에 부탁할 걸 그랬나?"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며 방법을 찾던 중, 기둥옆으로 이어진 쇠구조물이 보였다. 데크길로 이어진 철제빔이 T자형이라 다행히 잡을 수가 있었다.

낙엽과 마른 가지에 아침이슬에 젖어 미끄럽기까지도 한 보이지 않는 길에서, 양손은 T빔을 잡고 한벌씩 내디뎠다. 혹, 낙엽 속에 구덩이나, 만약 뱀이라도 있다면... 온갖 생각이 교차했지만 일단은 움직여야 했다. 이제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선 안 되는 형편에 놓인 것이다.

앞으로 가야만 한다.

고개 들어보니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부끄러워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는데, 그분은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그냥 지나쳐 버린다.

데크 아래는 내리막 언덕이라 내려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난간을 붙들고, 한 발씩 나아간다. 갑자기 뭔가 잡힌다. 벌레집이다. 거미줄도 있고, 딱딱하게 말라붙은(내가 아주 싫어하는 알집) 벌레집이 많이 있다. 평소 같으면 질색했을 것들도 마다하지 않고 잡을 정도로 용감한 순간이다. 발을 디디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곳에서는 난간아래로 고개 숙이며 지나야 한다. 꽤 온 것 같은데, 아직 폰씨가 누워 계시는 침소는 보이지 않는다.


한 발씩 나가다 보니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니 분석하고 싶어지는 본능을 어쩌랴!

"이 길을 수도 없이 걸어 다녔는데, 혼자는 물론 가족들과 이웃들과 그리고 강아지들과 며칠 전에도 산책하던 길이다. 사진도 얼마나 많이 찍었던가... 그래도 이런 실수는 없었는데? 왜일까? 여유 가지고 한 발짝 물러서서 천천히 하자는 마음으로 다잡고 있는데도 이렇게 아차 하는 순간에 실수를 하다니..."

사실 합당한 이유는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다각도로 분석하지만, 그것은 발생한 후에 나오는 결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분석은 결국 재발방지를 위한 길 일뿐이다.

한 편으론 벌레집도 개의치 않고 첼제빔을 잡고 고개를 숙이며 조심해 나가고 있는 모습에서 즐겨봤던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모험도 스쳐간다. 고고학 발굴 할 때의 위험이야 감히 이 정도에 비할 수도 없겠지만, 위대하고 열정적인 모험심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가당키나 했을까? 자신을 바쳐서라도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역사도 많았을 것이다. 어찌 역사뿐이었으랴...


데크아래로 가야 할 때는 머리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난간을 잡고 간다.

살짝 대이기만 해도 겁이 났다면 거짓말일까?

낙엽과 마른 나뭇가지 이불 삼아 겨울밤이 자고 간 축축한 아침자리는 다 비슷비슷하다.

"여긴 지 저긴 지 꽤 된 듯한데..."

아직 멀었나 하는 순간 저너머 폰씨가 약 올리기라도 하듯 나를 보고 웃는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한 손으로 난간 붙들고 조심해서 앞으로 나간 다음, 집어 들었다.

"아 감사하네 잘 있었나~ 폰씨? "

마침내 폰씨를 찾자 제법 여유를 부리며 겉옷주머니에 넣은 후 지퍼로 닫았다.

이젠 올라가야 한다.

온 길만큼 올라가든 내려가든 해야 하는데, 길이 미끄러워 올라가는 쪽이 낫다 싶었다.

한 손 두 손 난간을 붙들고 한 발씩 나아갔다. 거의 올라온 만큼 걸은 후 데크길이 내리막길과 거의 닿아 갈 부분에서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짧고 어쩌면 위험한 경험이었지만, 몇 가지 생각할 점도 안겨준 잊지 못할 추억의 아침 산책이었다.

순간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남기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 나중보다 주어진 순간을 느끼면 된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는 다시 한번 주변의 안전을 생각한 후에 찍어야겠다. 

인생 샷을 남기려다 사고사를 당한 사람들이 간혹 보도되긴 하지만, "뭐 저렇게까지 해서 찍어야 하나?"라고 얘긴 아니다. 위험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작은 실수에 대해서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항상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혹 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해도 그럴 수도 있을 뿐이다.

담담하고 여기면서 덤덤하게 받아들이면 그런 일에도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그래도 폰씨를 잘 찾았고, 모험? 하는 순간 탐험의 열정까지 맛보기도 한, 깜찍한(끔찍한?) 즐거움도 안겨준 아침이었다.


핸드폰을 찾고 돌아본 걸어온 길 / 앞 난간을 잡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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