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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09. 2021

스마트폰으로 쓴 터키 기행 1

기내,  카이세리

2013.06.16~06.22까지 터키를 여행한 기록을 핸드폰(갤럭시 노트 1)으로 쓴 글이다. 그때 기록했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쓴다. 이후에 터키를 다시 다녀왔지만, 처음 보았던 감동을 잊을 수는 없다.

2013년 찍지 못한 곳의 사진은 2019년도 사진을 쓰기도 한다.




2013.06.16

오후 4 시, 이것저것 잔 짐은 왜 이리 많은지 가방을 챙겨 들고 나왔다. 카메라를 두대 넣으니, 메고 다닐 가방 무게만 4.3 kg이다. 그래도 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어, 후지카메라와 올림푸스 dslr E 420 카메라(지금은 아주 클래식한 올드 카메라)에 망원렌즈까지 넣다 보니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핸드폰까지 포함하면 총 3대의 카메라로 터키를 담아 올 생각이다. 그러니, 좀 무거워도 참자.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공항 가는 길은 더 푸른 것 같다. 시화공단도 날이 맑아서인지 깨끗해 보인다. 작은 가 보리와 승리랑 일주일 동안 집에 있기로 해,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자유롭게 다니기도 힘든 집에서 종일 갇혀 살 텐데, 싫은 내색 않는 마음이 고맙다.


이번 여행에선 관심 있던 역사를 확인하고, 일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려 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태나, 사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이다. 한 달 이상을 끈 이번 일만 해도 문제보단 걱정이 먼저였다. 염려해야만, 일이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풀어질까 봐, 뭔가 조금이라도 행복한 일이 생겨 너무 즐거워하면, 혹 나쁜 일이라도 생길까 봐 조심하고 감정표현도 잘 안 하고 눌러온 탓인 듯싶다. 많이 고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것 같다. 이것도 무슨 증후군이라고 한 것 같은데... 나도 자유보단 책임에 눌려 살아온 한국인이라 그런가 보다.


잠시 다녀오는 여행길임에도, 다시 한번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평소의 행동은 천만년이라도 살 것처럼 염려하고 확인하고 살면서. 병원에서 중한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할 때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처럼 돌이켜 본다.  그땐 정말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돌아오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이 산다. 이번계획을 세워 깨끗이 정리 좀 해야겠다는 목표를,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이지만 또 가져본다.


나를 야무지게도 혹사시켰던 카메라들



11시 보딩 시작 11시 50분 이륙 2, 4, 2 좌석으로 한 열에 6 명 앉는 작은 비행기다. 비교적 체구가 큰 승무원들이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이슬람 문화의 느낌은 물씬 난다. "긴 시간 평안히 가도록 도와주세요". 터키어를 안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다.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설렘도 있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도 중요하다.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 더 즐겁기도 혹은 별로 즐겁지 않은 여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회사 동료들이 휴가 기간을 맞춰 함께 간다. 7323km 남아 있으니, 꽤 먼 거리다.


어쨌든 복도석에 앉았으니, 감사하다. 장거리 여행 갈 땐 특히 복도석에 앉아야 한다. 가운데 끼이면 화장실 갈 때도 불편하지만, 그것보다 양쪽에 갇혀 가슴이 답답하다. 나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해서, 숨이 막히는 느낌도 받았다(공항 장증상도 있는 것 같다). 다행히 갈 때마다 운 좋게 복도석에 앉게 되니, 이것도 소소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비교적 잠이 잘 온다. 터키는 늘 가고 싶었던 나라였다. 짧은 일정이지만, 이렇게라도 다녀오게 되어 좋다. 이번 여행 느끼고 찍고, 적을 예정이다. 침대에 누워 자진 못했어도 기내에서 충분히 하룻밤을 잘 잔다.


남은 거리 2806km,  시차가 7 시간 난다니, 도착해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카파도키아로 들어가면 아침 활동하기 좋은 시간이 된다. 하루 버는 것이다. 좀 피곤할 것이다만 이쯤이야. 씩씩한 승무원에게 커피 한잔 부탁해서 조금 마시고 빈 물통에 버린다. 커피는 쓴데, 떫지 않고 향도 진하지 않은 인스턴트커피다. 우리 항공사의 서비스가 다시금 그리워지는 대목이다. 얼굴이 건조해서 미스트를 살짝 뿌리고, 유칼립투스 오일을 머리와 코에 살짝 발라준다. 비행기 타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기내가 건조하므로 이렇게 해주면 좋다.


타인의 터키 여행기를 읽어 본다. 책은 감동일 정도로 상세하다. 나는 도무지 그렇게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림 그릴 때 한 땀 한 땀 붓 터치하듯 많은 내용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한번 봐서는 뭘 읽었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다. 하기야 터키의 역사가 어찌 하나의 역사이겠는가. 성지순례의 목표로 힘들게 첫출발을 했지만 사실 이번 코스는 워낙 짧은 일정이고 대중성이 높은 지역 위주로 다녀, 기독교 역사 장소는 다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 에베소만 해도 책에서 몇십 페이지에 달하는 설명이 있었건만, 그 지역을 다 돌지 못할 것이고 안내지에 나온 대로 대표적인 몇 군데를 둘러볼 일정 이리라.


그래도 이렇게 시작하는 거다. "나는 걷는다 "의 베르나르 올리비에처럼. 비록 도보가 아닌 비행기로 가지만, 이것이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바라는 것은 내 다리가 그분처럼 엄청난 거리를 여행 할 수 있을 때까지 씩씩하게 버티어 주는 것이다. 걸어서 세계 곳곳의 숨결을 느끼면서 "지구촌민"임을 체감하고 싶다.  빠른 시간 내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가는 도보여행을 반드시 하고 싶다. (아쉽게도 2021년 현재 아직도 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핑계만 댈 것도 아닌 듯싶다.)


역사의 도시로 간다는, 그것도 성경 역사의 한 중심지로 간다는 사실에선 의미가 크다.  옛날 선조들이 목숨을 몇 개라도 바쳐가며 지켜온 흔적과, 흥망성쇠를 함께 해 온 역사를 볼 것이다. 터키 동북쪽의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였고, 번성했던 고대 제국이었다. 로마나, 그리스 이전에 동양에서 시작된 문명의 정수를 볼 것이고, 고고학의 첫 삽을 뜬 하인리히 슐레이만의 터키(트로이는 못 간다)를 다닐 것이다. 어쩌면 이곳의 문명이 마케네로, 그리스 본토로 들어간 것을 볼 것이다. 아쉽게도 트로이와 페르가몬 왕국이 있던 차낙칼레와 베르가몬에는 가지 못한다. 다음에 꼭 가볼 것이다. 하란은 위험지역이라 못 가지만, 내 인생의 하란에서도 떠나는 경험을 하고 싶다. 짧은 일정에 비해 너무 큰 꿈인진 모르지만, 이번에 다 못 다니니, 다음에 또 올 수밖에 없는 꿈을 미리 키운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의 아침"도 주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하는 힘도 갖고 있다. 미래와 현재와 과거를 한편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자신을 추스르게 하는 새로운 에너지를 넣어주기도 한다. 분명 떠난 곳에는 밝은 해가 힘 있게 솟아 오른 시간이지만 깊은 어둠 한가운데를 가르고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있는 것처럼, 결국 모든 것은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 생각하면 지금의 처지를 안달하거나, 억울해하고 힘들어할 것도 없는 거다. 사는 게 어렵다 해도 삶을 전쟁터로 생각하지 말라. 그리고 용사처럼 살지 말아라. 매번 결의에 차서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살 필요 없다. 음악을 할 때도 굳어있는 표정, 보통 때와 똑같은데, "인상 펴라"는 소리 듣고, 폰으로 확인해 보면 정말 근엄한 표정이다. 잘 못하는 음악을 해서 그럴진 몰라도 머릿속은 부드러운 모습인데, 거울로 확인해보는 표정은 굳어있다. 머릿속이 진짜 나일까? 폰으로 보이는 내가 진짜일까... 이렇게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 유연하게 삶을 즐겨라. 열심히 살아왔으니 그 정도 자격 있다. 유연하게 즐겨라.



2013.6.17

여긴 일요일 새벽인가. 먼저 손 내미는 것이 훨씬 좋다.  이종선 선생의 책 " 따뜻한 카리스마"에 나오는 대로 "미소는 입꼬리를  약간  올리는 것이지만, 많은 것을 펴준다"는 말처럼. 그냥 내가 먼저 손 내미는 것이 훨씬 낫다. 우선 내 마음이 편하지 않는가. 인사를 나눈 앞좌석에 앉으신 할머니는 딸네 가신다고 이스탄불 공항에서 세 시간 기다려 헝가리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신단다. 한 아들은 독일에 살고 다른 아들은 두바이에 살고, 당신은 딸과 같이 한국에 사시면서 이렇게 자녀들 댁으로 여행 다니시며 사신단다. 나이 드셨어도 즐겁게 여행하는 할머니를 뵈니, 너무 일찍 떠나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멈춘다. 그보다 더한 사연을 품은 사람도 많을 것이라. 하지만, 어머니가 좀 더 오래 계셨다면, "효도다운 효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절대 잦아들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무리 많이 생각을 해도 언제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유일한 분이다.


"잠수종과 나비" 기내 영화를 한편 본다.  "엘르" 편집인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 후 "잠금 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려 언어치료사와 물리치료사의 도움으로 살면서, 오직 왼쪽 눈의 깜박임으로 대필하여 쓴 책 "잠수종과 나비"를 영화한 것이다. "다시는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겠다. 왼쪽 눈 말고도 멀쩡한 게 두 가지나 있잖아. 상상력과 내 기억력...지금 원하는 건 아직 본래의 나를 기억하는 것뿐." 그는 잠수종에 갇혀 얼마나 나비가 되고 싶었을까. 지금 내게 주어진 자유는 미안하고도 고마운 축복이다.


아침 7시 카이세리를 향해서 드디어 이륙한다. 약 한 시간 15 분 비행시간이다. 그곳에서 첫 번째 행선지인 데린구유와 카파도키아로 간다. 여기 공항은 유로존이 가까워 그런지, 달러보다 유로화를 선호한다. 기내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아침으로 먹는다. 통밀빵에 치즈와 오이 양상추 토마토로 속을 채운 야채 샌드위치, 밀가루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라 그런지 빵이 아주 맛있었더. 아무래도 이들의 주식도 빵이다 보니 훨씬 더 다양하게 맛있게 만드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특히나 터키 빵은 더 맛있단다. 이번 여행에도 먹는 것을 절제하지 않으면 살이 쪄 올 것 같다.


비행기 탈 때마다 느끼지만 구름이 참 좋다. 터키의 넓은 초원처럼 구름마저도 푸른 초원같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하얀 눈밭에 앉아 잠시 숨 고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숨 쉬고 사는 이 땅 위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훨씬 여유 있게 살 텐데... 돌아가면 더 많이 걷고 더 자주 하늘을 쳐다보리라.


이스탄불 공항에서


카이세리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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