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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13. 2021

스마트폰으로 쓴 터키 기행 2

데린구유, 카파도키아


2013.06.17

오후 5시, 호텔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글을 쓴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하루를 바삐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어깨에 마사지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 아침에 비행기로 카이세리에 도착해서 데린구유와 카파도키아를 들렀다. 카이세리는 터키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인 엘제스산(3,916m) 근처에 있는 도시다. 역사적으로는 카파도키아 왕국의 수도였다고 하며, 티베리우스 황제가 "카이사레아"로 명명한 것에서 "카이세리"가 되었다고 한다.


데린구유(Derinkuy)까지 가는 길엔 밀밭이 정말 많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인공 막시무스가 (러셀 크로우) 죽어서야, 바람 부는 노란 밀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너무도 인상 깊게 본 장면이 버스 안에서 내내 연상되었다. 여기도 저기도 노랗게 익어가는 밀밭이다. 터키의 밀생산량은 세계적이다. 익은 밀밭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벌거벗은 듯하면서도 속엔 뭔가 가득 차 있는 듯한 돌로 엉겨진 산이다. 우리나라의 산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 산은 포근하고, 풍성한 초록 밭이다. 온갖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비비고 살아가는 곳이다. 이곳은 스페인의 황량했던 산야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지중해 쪽이라 비슷한가 보다.



데린구유(깊은  샘물, Derinkuyu underground city)는 고대 히타이트 시대에 만들어져 최대 3만 명까지도 수용했던 곳이라 한다. 1960년경  카파도키아(Cappadocia) 데린구유(Derinkuyu )에서 오래된 집 지하실을 수리하던 중 벽 하나를 허물자, 방하나가 발견되는데, 들어가 보니 그것은 방한칸이 아닌 오래된 도시 전체가 그로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여러 설이 있다). 데린구유의 발견은 터키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촉망받게 된다. 터키는  로마시대 훨씬 이전부터 히타이트(데린구유를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고 함), 페르가몬 왕국 등 고대 근동 지방 역사 발생지로도 유명하다.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지하도시가 많이 있는데, 데린구유에서 발견된 도시가 가장 크고, 한때  2만 명 가까이 살았다고 한다.


지하는 10층 이하로 연결되고, 50km 떨어진 주변 지하도시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들어가 보는 이곳도 일부분만 발굴된 상태라고 하니,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많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구역이 있었다.  지하 3 층까지는 평상시 사용하던 곳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종족보존,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의지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음이 오래전 역사에서 증명되고 있음에 감동스럽다. 너무도 넓고 광활하기에 숨을 곳 없었던 백성들은 땅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일까. 속세의 연을 끓고 싶어서 단절한 것일까. 지하 4 층 이하가 기독교도들이 숨기 위해 만든 곳으로, 로마에서 봤던 카타콤 생각이 났다. 여기는 그곳보다 역사가 깊은 곳이다.


데린구유 입구

데린구유 내부 샘


키에서는 유적지 주변도 크게 개발하지 않는 것 같다. 데린구유 주변은 엄청난 유적지임에도 조촐한 시골 마을 같았다. 나는 주변 노점상이 늘어놓은 물건 중에 녹이 다 슬고, 목줄도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는 소 방울을 하나 샀다. 데린구유의 이미지와 오랜 역사의 느낌이 들어서... 주위에서 그런 버릴 것을 왜 사냐고 하며 웃었는데, 시골집에 살게 된 지금 우리 집 현관 앞에 강아지 풍경과 같이 매달아 놓았다. 잘 어울리지 않는가...  애정 한다면 쓸모없는 것은 없다. 소 방울 이라기보다 글래디에이터의 투구 같아 보인다면 망상일까.


카파도키아는 괴레메 국립공원에 있고, 괴레메 야외박물관(Goreme open air museum )으로도 알려져 있다. 익히 사진으로 많이 봐 온터라, 감흥이 엄청나지는 않았어도 지구는 장말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땅이 이렇게도 변모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덧붙이면  2019년 터키 여행에서 열기구를 탔는데, 카파도키아는 열기구를 타고 보는 것이 훨씬 더 멋있었다. 카파도키아 지방을 여행한다면 누구라도 열기구를 한 번은 타보길 권하고 싶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도 무섭지 않게 탔다. 땅에서 보며 다니는 카파도키아와 전혀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어둠의 교회 ( Goreme open air museum ;The dark church)에 들렀다. 천년도 전에 그린 성화 프레스코 벽화가 아직도 남아 있고 오래전 믿음을 위해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부는 바람 속에 스며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여기야말로 삶과 죽음도 하나의 자연이란 생각이 든다.   지형도 지형이려니와, 어떻게 돌을 파내고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들에겐 아마도 돌을 깎고, 더 깊이 은둔하는 게, 그 속에서 오로지 신과 대화하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점심은 항아리 케밥을 먹었는데, 소고기 냄새도 안 나고 부드러워, 몇 점 먹었다. 식당도 지하로 돌을 깎아 만든 곳으로 특색 있었다. 타지에 오면 사진 찍고, 그곳의 음식을 먹으면서, 잠시라도 현지 사람이 되어본다. 역사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화려하게 많은 유물이 남아있는 곳을 좋아하는 속물인가 보다. 봐야 믿고 좋아하는 "그냥 사람"이다.



2019년도에 터키를 다시 다녀왔다. 그때는 열기구를 탔기에 그 사진을 올려본다


예전에 열심히 봤던 "개구쟁이 스머프"가 살던 스머프 마을이 연상되는 "파사바 계곡"은 버섯과 같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즐비하다. 오래전 화산 폭발로 버섯의 갓 부분은 현무암으로 되어 있고, 아래 돌 부분은 응회암으로 되어 침식 속도가 달라 그런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마을, 금방이라도 투덜이 스머프가 손을 흔들면서 특유의 표정으로 "왜 이제야 왔어" 할 것 같다. 스머프의 모습 속에 근심 없었던 어린 시절도 투영되어 보인다.  1,300m에 이르는 벌집 모양의 바위산 "우치 샤르"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래 돌 집들과 어울려 앞으로도 카파도키아를 찾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주기 위해 오늘도 그들의 생업을 이어간다.


물이 정말로 뻑뻑하다. 석회질이 엄청나게 섞여 있는 듯하다. 모처럼 조용하고 평안한 휴식을 누려본다. 오늘 일정은 비교적 여유 있었다. 욕심 같아선, 카파도키아 일정을 오늘 다 마치고, 에베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왜 움직이지 못할까. 너무도 긴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하고, 묻혀있다 보니, 새롭게 방향을 튼다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머릿속으로, 가슴속으로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해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애를 써,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감하면서도 너무 안정적인 것만 추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인생에선 어떠한 결과도 도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원치 않는 결과가 도래될 때, 도전했는지조차 모르는 삶을 살진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니 도전하는 것이 낫다. 뭐가 되든 간에.


호텔방에서 나와 인근 구경을 한다. 호텔 수영장 뒤로 잔디구장이 있는데, 한적하고 아주 넓은 구장이다. 잔디도 축구장 전용 잔디인지, 작고 보드랍고 우리나라에선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내가 못 본 것이리라). 어른들도 아이들도 축구가 한창이다. 잔디가 잘 깔려 있지만, 화려하지도 않고, 물론 관중석도 없다.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 아주 쾌적하다.  이 바람 한 조각에는 카파도키아 흙먼지도 섞여 있으리라. 그러면서 오늘 나도 역사의 한 장에 서는 것이고. 역사가 어찌 대단한 흔적만 남긴 자만의 것이랴.


소박하고 순진하며 그저 친구들과 뛰는 것이 좋아 떠들며 운동하는 이 아이들이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함께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이들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녁은 호텔 뷔페로 온갖 야채와 다양한 치즈, 그리고 단 케이크와 과일로 이루어졌다.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꿀벌 집채(집채 꿀)로 매달아 놓아 직접 꿀을 받아먹도록 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토마토와 수박도 맛있고, 터키에서 빠지지 않는 후식 메뉴인 단 케이크 중 한 가지도 맛있었다.


저녁식사 후에 잔디구장으로 다시 나갔는데, 아까 봤던 아이들이 축구를 하며 놀고 있었다. 말은 안 통하고 시늉으로 좋아해 주니, 녀석들도 신이 나서 뭐라 한다. 듣고 보니, "안턀랴"라는 것 같아, 안탈리아에서 왔냐고 물으니, 영어 약간 하는 녀석이 그렇다면서 아주 좋아 죽는다. "안탈리아" " 안탈리아"를 외친다. 마치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침 한국서 챙겨간 "마이쮸"가 있어 하나씩 주니, 너무 좋아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과자 같은 것도 많이 사 가지고 올 걸 그랬나 보다. 애들이 너무 좋아라 해, 방으로 올라와 남은 마이쮸와 컵라면을 가져다 나눠 먹으라고 줬다. 아이들이 순수하고 꾸밈없고 욕심이 없다. 그리고 정말로 아이들이 애들 같다. 모처럼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웃고 사진 찍고 하다 보니, 낯선 곳에서 낙조의 아름다움도 맛보았다.

 

노을진 호텔수영장과 식당의 벌꿀집채꿀, 축구하던 아이들이 사진 포즈를 취해준다.


2013.06.18

흐린 날이다. 저녁을 많이 먹어서인지, 손이 붓고 꿈도 많이 꾼 것 같다.  이른 새벽이지만, 날이 흐린 듯한데 열기구들이 몇 개 날아오른다. 어릴 때 읽은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생각난다. 가능한 일이겠다. 결국 흐린 날씨 때문에 새벽 4시에 나갔던 사람들도 이륙이 취소되어 왔다. 몇 개 올라갔던 것들은 일기를 확인하려고 올라간 팀이란다. 나는 다음을 기약한다. 기약한 대로 2019년 열기구를 멋지게 탔는데, 일기 확인이 정말 중요하단 설명을 듣는다. 열기구가 뜬다고 가는 도중에도 못 뜬다고 연락 오기도 한다. 앱으로 수시로 기상정보가 떠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꽤 높은 고공(지상 1,000m) 에 오른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시 카파도키아로 간다. 어제는 동굴을 봤으니, 오늘은 차로 전체를 들러 본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일행들에게 사진을 많이 찍어 주겠다고 호언한 터이고, 인물사진을 잘 찍으려고 망원렌즈까지 가지고 왔으니, 작정하고 사진을 찍었다. 후지카메라와 올림푸스 dslr을 번갈아 가며, 그리고 렌즈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e카메라가 인물 사진이 잘 나온단 얘긴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 잘 나왔다. 나는 사진을 썩 잘 찍지도 못하고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하나, 순간 포착은 잘한다. 여러 번 셔터를 눌러대며 가장 좋은 표정을 잡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진 잘 찍는 비결 중의 하나도 순간 포착을 잘하는 것이라니, 인물을 찍은 사진이 그래서 쓸만한 것이다. 아무튼 봉사도 좋은데, 남의 사진 찍기 시작하면, 내 여행은 제대로 안된다. 한 사람만 찍어 줄 수도 없고, 여기서만 찍어 줄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정말 사진사가 되어 카메라 여러 대 가지고 온 죄로, 셔터만 눌러대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의 좋은 경험이다. 물론 앞으로도 사진기는 가지고 다니겠지만, 그저 잘 나오는 것 하나면 족할 듯하다. 여러 대는 안 가지고 다니겠다 결심한다. 그리고 핸드폰이 있어 천만다행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제 남들이 찍어주는 사진보다 원하는 대로 찍을 수 있는 고성능의 손 안의 폰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계곡에 살구나무, 포도.. 블루베리  



차가 털털거려 글을 쓰기 힘들다. 유럽보다 아스팔트가 조금 거친가? 고속도로 들어서는 조금 낫다. 차창밖으로 그라나다 느낌이 난다. 역사적 배경 탓인지 유럽 느낌도 강하다. 어디로 간다고 했더라? 네 시간 이상을 달린다는데... 아! 콘야로 간다. 셀주크 터어키의 역사가 있는 가장 종교적인 도시라 했다. 가이드가 상당히 박식하다. 동서 양사를 꿰뚫고 있는 듯하다. 터키의 뿌리 찾기 설명, 근 한 시간을 했다. 하늘은 너무도 파랗고 아름답다.  오늘 밤엔 별로 뿌려진 밤하늘을 꼭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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