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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21. 2021

스마트폰으로 쓴 터키 기행 3

콘야, 아스펜도스,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안탈리아


2013.06.19  

콘야는 터키의 대표적 곡창지대로써  인구 100만의 대도시며 1100m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콘야에 들러 알라딘 언덕에 있는 알라딘 사원과,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 구경을 잠시 했다. 왁자지껄한 주변의 삶 속에서 이렇게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차를 배 타듯, 출렁이며 타보긴 처음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건축물이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 가는 것도 좋지만,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곳이 더 좋다. 여기도 사이프러스 나무가 많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오랜만에 강(혹 인공수로?)을 보았다. 넓은 대지에 물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처음 강 같은 물줄기를 봤다. 터키는 땅속에 물 매장량은 충분해서  경작지엔 주로 스프링클러로 물을 주는 편이라고 한다. 토로스 산맥을 넘어 지중해 안탈리아로 간다. 토로스 산맥은 높이가 3000~3700m에 이르는 거대한 산들을 품고 있다. 토로스 산맥을 기점으로 스텝 지역 (아나톨리아 고원지역)과 지중해 지역으로 나눠진다고 한다. 토로스 산맥은 황소의 등줄기를 닮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비교적 완만하게 굵고 길게 이어져, 황소의 등뼈에 비유된 듯싶다. 버스로 넘어가는데, 과연 크고 작은 등줄기들이 골을 이루어 좌우로 흔들리며 산을 넘어간다.


사도바울과 누가가 넘어갔던 길이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산맥을 넘었을까. 황량한 산길을 무엇으로 연명하며 갔을까.  알렉산더가 아나톨리아 반도를 넘어올 때 이스탄불을 경유하지 않고, 이곳으로 왔다 한다. 애환의 역사가 서려진 산맥을 넘어 지중해로, 안탈리아 접경지역으로 간다. 1820m 고지대에 놓인 도로를 가로질러 넘어가는 데도 세 시간 반이 걸린다.


아스펜도스 원형경기장에 들른다. 아스펜도스 (Asependos archaeological site)는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주변으로 폐허가 된 고대 건축물의 잔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얼마나 화려한 과거를 지녔는지 몰라도 폐허가 된 흔적 속에서 인생사의 허무함도 보지만, 역사가 살아 움직이는 증거도 본다.  아스펜도스는  지중해와 16km 떨어진 산언덕에 있지만, 로마시대에서는 아스펜도스 옆에 있는 유리 메도 강으로 배가 올라올 수 있었다고 한다.  


원형이 거의 완벽하게 잘 보존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지은 원형극장이 있다. 지금도 여름이면 공연을 한다. 원형극장은 울림이 완벽하여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도 무대에서 부르는 소리가 잘 들린다고 한다. 우리 일행들도 실험해 봤는데, 정말로 잘 들였다. 고대인들의 지혜에 감탄할 뿐이다. 여름밤에 오페라라도 공연할 때 꼭 오고 싶었다.


차낙칼레 (Canakkale), 트로이의 유적이 있던 곳. 트로이의 발굴과 더불어 모든 보물을 가져간 열강들에게 " Troy wants her treasures back"이라고 쓴 트로이 발굴과 슐레이만에 대한 팸플릿(소책자)을 아스펜도스 안내소에서 가지고 왔다. 가져왔다. 어릴 적 가졌던 꿈을 이룬 슐레이만이 독일 사람인지라 슐레이만의 보물들은 독일로 반출되었다가, 러시아 등 가슴 아픈 사연을 품으면서 떠돌고 있다. 터키는 당연히 자국의 보물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아쉽고 애틋하듯이 사연 없는 역사가 어디 있겠냐 마는 잠시라도 공감한다.


 바람 부는 언덕에 산재해 있는 건물들의 흔적을 가능한 많이 담으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내려오는 길에 어쩌면 오래된 돌담의 한 공간을 구성했을지 모를 굴러다니는 조그만 돌 하나를 주웠는데, 신기하게도 개의 두상 같은 그림이 보인다. 물론 그린 것 아니고, 돌에 무늬가 박혀있었다. 아마 내가 개를 워낙 좋아하니 그리 보였으리라. 이 조그만 돌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스펜도스 원형경기장을 만들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을까.



토로스 산맥을 넘어가던 중에 찍다. 괴레메 국립공원과 파묵칼레 입장권

아스펜도스 원형경기장 중앙무대와 입구

트로이 팸플릿과 원형경기장의 귀빈석

아스펜도스 주변 유적


안탈리아, "피로 얼룩진 역사의 바다"라는 표현이 안 어울리도록 파랗고 잔잔한 지중해의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시이저와 옥타비아누스가 건넜고 안토니우스를 결국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한, 동방과 서방을 잇는 역사의 장을 이뤄 온 위대한 바다, 지중해가 있었기에 로마가 완성되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말이다.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 때 "위대한 미션"의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버리고 오직 믿음을 위해 뱃길에 올랐을까... 오늘도 그 모든 역사를 뒤로 한채, 파랗다는 말 자체가 무색하리만큼 파란 코발트빛으로 온 하늘을 파랗게 품고 있다. 지중해는 와봐야 색감을 이해할 것 같다.


안탈리아는 지난밤 호텔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살던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2019년 터키를 다시 만났을 때 현지 가이드였던 "Asye"가 안탈리아 출신이다. 일주일을 다니면서 정이 들어 꼭 안탈리아를 다시 방문해달라고 했었고, 코로나가 끝나면 꼭 다시 터키를 방문할 것을 다짐해 본다. 

 

구시가지 쪽 해변가를 들렀는데, 지중해의 푸르름을 보면서 바다로 마구 뛰어들고 싶었다. 해변을 개인 비치처럼 만들어 10달러 정도의 요금만 내면 하루 종일 놀 수 있단다. 이 바다는 가까이서 보면 초록색인데, 넓게 보면 코발트블루였고, 사람들도 북적거리지 않고 쉴 수 있는, 호화스러워 보이면서도 소박한 풍경을 안겼다. 해변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안탈리아는 고대 유적도 많이 보존되어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우리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이 있는 올드시티 쪽을 걸으며 잠시 안탈리아의 정경을 누려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차에 올랐다.


안탈리아의 개인 비치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

안탈리아 구시가지 해안과 풍경

파노라마로 찍은 안탈리아 구시가지 

파노라마로 찍은 안탈리아에서 바라본 지중해


2013.6.20

오늘은 파묵칼레(Pamukkale, 목화의 성) 간다. 어제 지중해 바다에 못 들어간 것이 못내 아쉽다. 그 바닷가는 깨끗하고 주위 경치도 아름다웠고, 나무들과 어울려 해변이 마치 옛 로마 영화에 나올 듯한 배경이었다. 사람들이 난간에서 해수욕장 쪽을 바라보고 셔터를 눌러대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즐길 뿐이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비치파라솔 아래 일광욕을 즐기고, 대화를 하면서 삶을 누린다. 평생 반 이상을 체면치례로 남 눈치 보고, 사는 모습과는 천지차이였다. 자유도 누릴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구 시가지라 건물들도 대부분 작고 오래되고 낡은 소박한 건물이다.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 모습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곳이 더 정감이 가고 예쁘다는 마음이 오래간다.


파묵칼레는 히에라폴리스의 언덕과 산을 뒤로하고 앉은  석회암 지질의 특별한 얼굴의 지형을 하고 있다. 석회석의 탄산칼슘이 과포화되어 지표면으로 넘쳐흘러 이런 모양을 형성했다고 한다. 사람의 재주로는 만들기 힘들기에 "신묘막측" 하단 말이 어울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지와 합해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파묵칼레의 지형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이런 지형이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주변은 조그만 도시다. 별로 큰 건물도 없고, 리조트 같은 호텔과 작은 식당들이 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크게 개발하지 않은 면도 있겠으나, 별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고 볼 수 있는 사람들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우리였으면 땅투기자들부터 우르르 몰려와 개발하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명소임에도 일급 호텔 하나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성형 안 한 얼굴로 보존이 가능한 것 아닐까.


파묵칼레 위쪽 히에라 폴리스 쪽에 온천욕장이 있다. 고대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욕장 그대로다. 물속에 돌기둥과 파손된 대리석조 각상들이 그대로 가라앉아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온천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오래된 곳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덧붙이려고도 않고, 새것으로 교체하지도 않는다. 하루에도 수없이 뽑았다 옮겼다는 반복 하며, 맘에 안 들면 잘라 버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두고 보존하는 것을 보니, 개발을 하지 않는 게으른 면도 있을지 모르나, 두고 볼 줄 아는 여유가 있어 부럽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는 기원전 2세기 말 페르가몬(Pergamon)을 통치하던 아탈리드(Attalid) 왕조의 왕들이 파묵칼레의 온천을 이용해 여러 건물 사원 목욕탕, 등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했다. 그 후 로마에 점령당해 여느 헬레니즘 도시들과 같은 양상으로 발전한다. 아나톨리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 유대인 등이 거주하는 국제적인 도시로 번성을 누리다가 소멸된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럽다는 ‘히에로스’(Hieros, holy)와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스’(city)가 합쳐진 말로 "신성한 도시"라는 의미다. 


온천이 발달해 로마의 유력인사들이 은퇴 후 많이 거주하던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공동묘지가 많아 "죽은 자 들의 도시"라고도 불렸다 한다. 젊어서 세계를 누비던 로마인들이 늙어 편히 쉬며 마지막 자신들이 들어갈 자리까지 이곳에 만들었다고 하니, 여러 애환이 서린 도시기도 했겠다. 지진 등으로 파괴되어 흔적만 많이 남아 있다. 토라 산맥을 끼고 쏙 들어앉은 그러면서도 아주 멀리까지 관측이 가능한, 뜨거운 햇살 아래의 원형경기장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온천욕장과 파묵칼레 중간에 있는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 들러 관람한다. 도시가 상당히 컸고 발전했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히에라폴리스 온천 수영장과 히에라폴리스 지도

히에라폴리스 언덕과 원형경기장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박물관 입구

히에라폴리스 박물과 내부와 전시유물


오후 6시 45분, 7시 30 분부터 식사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호텔이라기보단 리조트지만, 파묵칼레가 보이고, 수영장과 온천도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유럽 사람들인지, 러시아 쪽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백인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동양인은 우리뿐이다.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저녁식사는 야외에서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있다. 음식이 요란하게 많지도 않았지만, 사방이 뚫려있고 2천 년 전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에서 지금도 이천 년 전이나 별 차이 없을 풍광 속에서 하는 저녁이라 색다른 감동을 받는다. 일행들이 모두 너무 좋아한다. 오늘 저녁의 이 아름다운 경험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터키 음식 중 어떤 것이 딱히 "이 맛이야" 할 절도로 나를 끈 것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품이 참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농약을 쓰지 않은 야채 과일,  합성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료 자체의 맛으로 만든 신선한 음식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어느 호텔에서나 넘치도록 나왔던 수박의 맛도 잊을 수 없다. 브라질에서 망고를 지겹도록 먹었던 것처럼 이번 여행에선 수박을 실컷 먹었다. 아홉 시가 다 되도록 해가 머물러 있다. 신께서는 차별하지 않으신다. 바람이 아주 많이 분다. 마지막 애잔이 끓어진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다. 그렇게 불던 바람도 자는듯하다. 


인터넷이 된다고 해, 호텔 로비에 앉아 오랜만에 검색엔진을 돌린다. 문득 온갖 합성 첨가물로 도배된 가공식품을 보는 느낌이 든다. 매일 보고 먹고살던 것이었는데... 며칠 동안 TV와 인터넷 접속을 하지 않다, 접하니 소화되지 않는 음식이 앞에 놓인 기분이다. 지금은 10시 18분이다. 멀리서 마지막 애잔 소리가 들려온다. 음률은 같은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의 목소리가 다르다. 오늘 하시는 분은 목소리가 조금 가는 것 같다. 하루 세 번 무릎 꿇는 일도 꼬박 지키기 힘들었던 사람이었지만, 이슬람교도보다 더 하지는 못한다 쳐도, 같이는 해야 하지 않을까 반성해본다. 


우리가 머물렀던 리조트와 리조트에서 바라본 파묵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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