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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n 01. 2021

스마트폰으로 쓴 터키 기행 4

에페소스, 이즈미르


2013.6.21  

4시 22분 어김없이 애잔이 울려 퍼진다. 애잔은 기도하기 전에 하는 일종의 외침으로 터키어로 애잔(Ezan)인데, 이슬람어로 아잔(아단)이라고 한다. 알라신께 기도하라는 소리로 하루 다섯 번 한다고 한다. 모하메드가 시간을 알리기 위해 잔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 터키에선 기도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이 새벽에 개소리와 큰 기도하라는 소리만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원래는 육성으로 장로 등이 봉사로 하는 것인데, 요새는 녹음된 것도 많이 쓴다고 한다. 아마 이스탄불같은 큰 도시에서 쓰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여러 본성을 잠재우는 외침 같다. 녹음한 것을 틀어놓지 않고, 저 소리가 들리는 곳에 살아야 축복을 받을 수 있단다.


두 가지는 확실하다. 스피커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고,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은 없을 것 같다.  이슬람교도들은 이 시간에 모두 일어나, 있는 곳에서 기도할까? 며칠 들으니 애잔 소리도 심금을 울린다. 사람은 역시 습관과 교육의 산물인 듯하다. 돌아가서는 이들의 믿음, 반만이라도 신실히 닮고 싶은 마음이다. 아니다 그런 마음이 있으면 당장 여기서 무릎 꿇을 일이다.


새벽의 애잔 소리가 콘야와 안탈리아에서 들었던 소리와는 달랐다. 왠지 더 구슬펐고, 가슴을 후벼 드는 소리 같았다. 매일을 히에로 폴리스의 역사와 함께 사는 곳이라, 인간의 흥망성쇠나 부귀영화가 다 부질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까... 욕심을 부린들, 좀 더 가지려고 애쓴들, 결국 바람 속에 쓸려가고 말 것을 말하기라도 하듯, 비우고 살라는 소리 같다.




우리나라처럼 깊고 우거진 산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속살까지 다 드러나 보이는 삼베 적삼을 입은 아낙처럼, 이곳 터키의 민둥산(그렇지만 너무도 많은 것을 품은 듯한)도 참 매력적이다. 사막 같으면서도 사막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는 솔직한 풍경이다. 돌과 올리브나무처럼 짧은 키의 나무들이 많다. 나지막한 풀들이 있다. 찬 것 없이 비어 보이는 이 땅이 왠지 정감이 간다. 어쩌면 비어있어 목축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터키도 신선한 유제품이 넘쳐난다. 신선하다는 것도 와서 보니 인증하겠다. 이런 황량하고 평화스럽고 조용한 자연 풍광을 가슴에 담는다.


농경사회 출신의 국가(?)와 목축 사회 출신의 국가(?)는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얘기를 오래전에 들은 적 있다. 농경사회는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같은 것을 보는데 비해 목축 사회, 즉 유목민의 사회는 매일 다른 것을 보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더 넓게 말하면, 예전에 칭기즈칸의 몽골은 말에서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다고 한다. 내릴 새도 없이... 어쩌면 말위에서 보니 더 멀리 보일 수도 있었겠다. 농경사회와 목축 사회의 차이점을 말한 것이고, 떠돌 수밖에 없는 유목민들의 애환을 크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제 시내 번화가에서 귀에 인식표 부쳐놓은 개 두 마리, 사람들 왕래하는 대로 중앙에 두 다리 뻗고 드러누워 자는데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 없었다.  카페 앞에서 애완견, 페키니즈를 봤는데 귀에 인식표는 붙어 있지 않았다. 아마 주인 없는 떠돌이 견에게만 붙인 것 같았다. 터키 분위기는 주인이 없는 게 아니라, 모두가 주인인 것 같았다. 동물에게 특히 친절했다. 개들도 순한데 발에 피부병이 더러 있었다. 석회질 토양이라 그런가? 아니면 뜨거운 바닥을 거침없이 맨발로 다녀서 그런지.


파묵칼레로 오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터어키의 역사나 사람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중에, 이 사람들이 전쟁을 많이 한 민족이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가 컸다는 얘기에 감동스러웠다. 자신들의 전쟁에서 남겨진 과부나 고아도 거두고,  6.25 전쟁 때 파병된 터어키군들이 전쟁고아까지 거뒀다는 얘기도 들었다. 내 것을 구분 짓기 좋아하는 민족과는 다른데, 어쩌면 고대 터어키의 지형적인 위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든다. 오늘은 5,6,7 스케줄 다섯 시 기상, 여섯 시 식사, 일곱 시 출발로 지금 에페소스를 향해 가는 중이다.




고대에 불이 꺼지지 않았던 네 곳 중의 하나, 그리스, 로마,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에페소스, 사도 요한의 고향이며, 요한이 마지막 숨을 거두고 계시록을 쓴 밧모섬이 있는 곳이다.  에페소스(Ephesos)는 기원전 15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처음 세워졌다는 오랜 역사가 있는 고대도시다. 38 도를 넘는 뙤약볕 속에서 가이드는 중요한 곳만 다니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에페소유적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셀수스 도서관과 하드리아누스 신전이다. 전면 앞에 서보니 그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지었는가 싶었다.


셀수스 도서관은 AD 135년 아퀼리아에 의해 아시아 총독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Celsus Polemaeanus)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 도서관 아래에 셀수스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데, 효심에 더 아름답게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는 정문만 남아 있는데, 세 개의 문으로 상단에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역사 기념물답게 흑백으로도 찍어 본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듯 흑백으로 찍어 본 셀주크 도서관



승리의 여신 나이키 상

바다로 나갔던 길과 에페소원형경기장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AD 138년, 로마 오현제 중의 하나였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었다. 에페소 구석구석의 유적은 한 시간 반 동안 고대 로마 속으로 다녀온 느낌을 주었다. 뚫린 화장실에 앉아서도 대화를 했던 그 시절 사람들. 물론 권력자들의 삶이라 손에 흙 묻히지 않으니, 대화하고 토론하며 향락적인 문화로 그들의 역사를 이어간 부분도 없잖아 있겠다만, 평민들도 대화에 격이 없었다고 하니, 나름대로 오래 전의 열린 민주주의를 보는 듯하다. 에페소는 양쪽 산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았다. 에페소스에서 본 익투스 문양은  당시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성적으로 퇴폐하고 문란한 생활이 많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에페소스에서 열심히 전도한 흔적이다.


페소스 경기장은 소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지금은 육지화되었지만, 입구의 원형경기장에서 멀리 배가 들어오는 것을 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원형경기장 2층의 쓸쓸한 돌의자 위에서 저 멀리 열주 밑으로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상념에 젖는다. 아마 그 옛날 누군가가 돌아오길 눈이 빠지라 기다리는 아낙의 마음이 베여 있는 난간은 아닐까.  열주가 들어선 그 길엔 불빛과 화려함으로 살아있는 에페소스가 밤새도록 잠들지 못했으리라.


원형경기장은 그리스식과 로마식이 있다고 하는데, 차이는 무대석 앞이 막힌 것은 로마식, 무대석 앞이 뚫린 것은 그리스식이라 고 한다.  그리스는 희극 등의 연극을 하던 곳이고, 로마의 경기장은 알려진 대로 검투사의 시합 등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도시가 멸망된 이후로도 대륙을 오가는 대상들 이용하라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를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현대 고고학의 덕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오늘날 로마나 아테네 이스탄불 등의 대도시도 파기만 하면, 고고학적 유물이 쏟아져 도시가 흠짓 중세와 고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무엇을 택하고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연구해 나가야 하는 것이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들의 힘든 고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 같은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아직까지 잘 조절해 나가는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대부분 승자의 역사다.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뒤틀린 역사도 있는 것이다. 


고고학이란 자신과의 싸움이다. 꿈을 좇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허상이라도 쫓았기에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터키는 한꺼번에 여러 역사를 보게 되어, 짧은 순간에 글을 남기기가 어렵다. 그저 감동스럽고, 막막하고, 좋다는 느낌이랄까. 한꺼번에 수천 년을 입력시키려니 글이 안 써진다. 돌아가서 차분히 정리해야 할 곳이 터어키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 따윈 생각하지 말고 지금 보고 느끼면서 마음에 담을 일이다. 


 


인생도 순례자 길이라면서가는데 마다 보따리가 조금씩 는다. 여행 떠날 때는 단출하게 결심하지만, 돌아갈 때 보면 하나둘씩 짐은 꼭 있다. 물론 그때그때 하나씩 마련했던 추억의 기념품(자그만 개인형과 티스푼이 대부분이지만...) 들을 보면 여행 당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좋을 때도 있긴 하다. 이즈미르 공항에서 16시 50분 출발하여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공항으로 향한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 벌써 이스탄불로 간다. 오늘 밤과 내일 온종일 보면 끝이다. 일주일 동안 알려진 곳 위주로 다녔을 뿐이다, 


늘 와 보고 싶었던 터키에서,  와서 너무 좋았던 터키로 바뀔 것은 분명하고, 앞으로도 다시 찾게 될 터키로 바뀐 것은 분명하다. 에페소서 길고양이들, 더우니까 시원한 데만 찾아 드러누워 잘 쉰다.  콘야 시내에서도 번화가 대로변에 커다란 녀석들이 사람들 길을 막고 쭉 뻗어 누워자도 누구 하나 건드리거나 쫓아내는 사람 없었다. 이 거대한 유적지의 진정한 주인처럼 고양이와 개들도 저희 편한 장소에서 쉼을 줄기고 있었고, 터키 사람들은 그걸 인정했다. 나는 그런 점맘에 들었다. "문화"라는 미명 하에 억지로 개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점 왜냐면. 이들처럼 우리도 결국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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