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다 떨어진 마른나무들이 더불어 숲을 이뤄,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나무 숲인지 다르지 않습니다.
표도 나지 않지만, 가만히 숨 고르고 자세히 보면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길이 보입니다.
무작정 걸어간다면 보이지도 않았을 길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아련한 자욱이 보입니다.
누군가들이 지나가면서 자신들의 온기를 불어넣어 무성한 가지들을 살짝 열어 놓은 듯한...
걸어간 발자국이야 금세 사라질 것들이지만,
가슴에서 불어 나온 온기는 얼굴 스치는 마른 생명들에게 작은 변화로 번집니다.
바라보는 이에게도 투영되지만, 곁에 있던 마른 가지들은 누구보다 반가운 마음에 목이 멥니다.
바라보며 여기까지 온 나도, 뒤 따라올 누군가를 위해 온기를 불어넣고 가야겠습니다.
선하기 위해 강하게만 살아온 길은 원하지 않습니다. 나눔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과정을 흘려버리고 갈 수만은 없습니다. 이 숲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여기 있는 생명들 역시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지만 길은 끊겨있지 않고 계속 이어지며, 들어선 이들은 결국 이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성탄절을 잊지 않고 살던 아이는 헌 책방에서 동전 몇 개로 "어깨동무"를 사 신문지로 잘 포장해 동생에게 선물했더랬습니다. 동생은 해맑게 웃으며 얼마나 좋아라 했던지, 아이에게 선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성탄절이었습니다. 아이는 동생의 행복한 웃음을 감사했고, 살아있는 지금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여린 결심을 합니다. 오늘처럼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려 쌓이는 성탄절은 수십 년 전 아이의 마음에 새겨졌던 행복과 감사함의 이어 짐이며 어린 동생의 웃음이 투영된 선물입니다.
가고 싶은 길이나 가지 못한 길은 결국은 걸어온 길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돌아보니, 걸어왔던 길은 가고 싶었던 길이었고 가지 못한 길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하얀 눈이 포근하게 쌓여가는 숲길에는 따뜻한 사랑과 꿈과 행복이 놓여있습니다.
누군가들이 먼저 지나간 길일수도 있고 내가 먼저 가야 할 길도 있을 것입니다.
어디쯤에 끝이 있을지도 모를 길입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가슴에서 나오는 온기는 뒤따라올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잔가지들로 하늘마저 가려진 길이지만 그 길 한 편에는 화사하며 향기로운 꽃들이 필 것이며 초록으로 물든 가지들이 반기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