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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Dec 09. 2023

나무 나이로 먹어 그래요!

나무 나이로 셈하며 삽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얼굴이 그대로네 ~ "라고 칭찬? 한다. 듣기 좋으라는 말이겠지만 '동안'이라는 소리가 싫진 않다. 몇 해전만 해도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올해는  많이 삭아 전혀 아닌 것 같은데도 동안이라니...

얼굴, 특히 부드러운 인상에 대해선 할 말이 별로 없다. 예전부터 첫인상이 딱딱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은 데다 엑센트가 세어 말할 때도 강해보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소통의 부재?로 관계가 힘들었던 때 팀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말씀하지 않고 있으면 화난 것 같아요... "

내심 억울한 마음도 들어 거울에 비친 평소의 모습을 보니, 웬걸 인상파는 멋있기라도 하지, 싸우러 작정하러 나온 사람 같은 심각한 화상(畫像)이다.

"너는 말하거나 웃지 않고 있으면 인상파야~~"

학창 시절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투영된다.

"생각하느라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바라보는 상대방에겐 이런 인상을 줄 수도 있구나..."

그 후론 주의하는 편이지만 쉬 바꿔지진  않는다. 말하지 않고 있을 때도 혹 경직된 얼굴은 아닌가 신경 쓰며 입꼬리를 올려보기도 하지만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외모는 저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간다.

특히 얼굴인상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있던 이념(?)이 자연스레 형상화된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게 '동안'으로 보인다는 말은 큰 칭찬이다. 나이에 비해 많이 노화되진 않았다고 다독거리고 살지만, 아침에 거울을 보니 평화로운 모습이 보인다. 웃는 연습도 많이 하진 않는데 이전보다 확실히 부드러워 보인다.

한적한 시골에 있어 화들짝, 친구를 만나 웃을 기회도 적은데 '웬일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새로 사귄 친구덕인 것 같다.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는 자연의 생명들이다.

부동의 나무와 꽃과 사시사철 변덕 심한 날씨, 아침저녁 다른 모습으로 영감을 주는 하늘, 온갖 향기부대를 고 날아다니는 바람, 온 마당을 헤집고 움직이는 강아지와 고양이들, 아침저녁 때도 없이 지저귀는 새들까지 자연 속의 온갖 생명들이야말로 소중한 친구들이다.

친구는 서로 닮아 간다고 했던가.

늘 푸르른 자연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부드러운 자연친구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자연이라는 든든한 친구부대 속에서도 아침마다 인사하는 눈앞의 나무를 닮아가는 것 같다.


아침 산책길에 홍목련이 유독 눈에 띈다.

봄에 붉게 피는 커다란 꽃송이는 피자마자 꽃잎을 떨어트리기가 바쁘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붉은 꽃잎은 떨어지고 커다랗고 본때 없는 나뭇잎은 초록색잎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한다. 봄도 여름도 낙엽조차 풍성한 가을에도 제 몫을 충분히 해낸 나무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겨울까지 소박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덤으로 내년 봄의 꽃 몽오리까지 내비치고 있으니,

한 해 더 먹어 혹 우울한 사람들 앞에, 한 해를 더 먹게 돼 오히려 고맙기라도 하다는 듯 행복한 자태로 겨울을 맞이한다.


나무는 나이를 탓하지 않는다.

나무는 제 나이와는 상관없이 꽃도 잎도 한결같다.

나무와 꽃들로 들어선 자연 속에 살다 보니 말하지 않던 나의 모습도 조금씩 닮아가나 보다. 여유가 생기고 평화를 느끼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피부 속으로 정신 속으로 맑은 기운이 퍼지나 보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현자의 말이 조금 늦은 감 있지만 내게도 적용되어 가는 것 같다. 세상만사 어찌 돌아감에 상관없이, 맑고 푸르고 싱싱하게 적응해 가는 자연 친구들이 나눠주는 푸르름이 내게도 스며들어 나이를 뒤로 돌려가는지도 모르겠다.


동안으로 보인다는 지인에게 말한다

"나무친구 나이로 먹어 그래요"


한 해가 물러가고 있는 12월이다. 성과정리는 물론 내년 목표까지 설정해 놓고 검토하느라 바쁜, 모두들 그렇게 살고 마무리하고 준비하는 12월이다. 거창한 맺음과 시작도 없지만 오늘 아침을 걸으면서 지금 현재를 생각한다. 아직도 행복해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정해놓고 사는 인생에서 벗어나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감사하고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오늘 다시 되감아 시작하는 하루라는 테이프에는 '나무동안(童顔)'의 나이로 살아갈 수 있음에 행복한 날이다.





한 해 동안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구독벗님들께 미리 새해 인사드립니다.

오늘 당신은 가장 젊은 나이이고 나이와 상관없이 멋지게 자라 갈 나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나무 나이로 살아갑니다"


다시는 보지 못할 또 한 해를 보내야 할 이즈음

혹 아무것도 한 것 없는듯한 무력함에 우울해진다면,

나이는 쌓여 가는 것이 아니라

"디디고 서게 하는 거름이요, 선물"이라는  

자연과 살아가는 아이들의 위로로 용기 얻으시길...


제 나이를 상관없이 사는

나무들이 꽃들이 하늘이 바람이

자연의 친구들이 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나이는 숫자요, 잘 돌보면 늘 함께 할 고마운 친구"라는 진리를

바로 이 순간을 충실하게 누려간다면,

당신의 나이는 언제나 "지금"입니다.

당신의 얼굴도 언제나 "동안(童顔)"입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언제나 그랬듯이

고마운 친구들이 당신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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