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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Nov 23. 2023

걷는 것이란


오래된 운동화를 신고

낙엽수북한 길을 헤쳐 걷는다.

디디고 가는 길마다

바스락 사각사각 화답가가 들린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누군가라도 건드려 주기를 바랐기나 했듯 웃으며...

세월이 좋았다면

누군가에 의해

고운 향내를 풍기며 온하늘을 날아오를 아이였건만,

시간마저 각박해진 형편에서

떨어진 아이들

거둬 올려 보낼 여유조차 없었던 가을이었나 보다.


빈, 그냥인 채로 걷는다.

이전에는 다가오지 않았던 것들이

빈 공간 알아보고 퍼즐 맞추듯

하나씩 제자리로 들어가 주사위를 맞춰준다.


아무 생각 없는 발걸음 속에

잠재의식 속 문제? 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타닥타닥 내딛는 소리에 맞춰,

장기판의 졸들이 한 발씩만 나갈 수 있듯

한 걸음씩 승세를 향한 방향도 보여준다.

일부터 꿰맞추려는 것도 아니었지만

비우고 걷다 보니 주어지는

덤 같은 맑은 선물이다.


애초에 걷는 데는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움직임이 곧 걷기고

움직여야 사는 삶이 바로 걷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모든 우리들은 걷고 있었다.


널리 알려져 있는

걷기의 효용성과 고마움을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아무것도 담아두지 않고

무엇도 끄집어내지 말고

오직 눈앞의 변해가는 자연과

고개 들면 보이는 푸른 하늘을 더불어

걷는 것에만 순응하여

앞으로 나가다 보면

어느새 막혀있던 골이 하나씩 채워감도,

새로운 열림도 경험하게 된다.


매 순간 걷는 것은

처음부터 자신을 다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스며든 즐거움과 슬픔은 거름 되고

넘쳐흐르는 일상의 노여움들은 버리며 가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에라도 일어나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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