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솜이가 왔다. 삼색이의 아기, 여름에 들어와 제 어미와 딱 붙어 지냈는데 서울살이 몇 달 하고 내려와 보니 어디로 갔는지 못 본 지 두어 달 되었다. 지난주엔가 비슷한 녀석이 들렀기에 사진 찍어 비교를 해보니 솜이가 맞았다. 안 보여서 어디서 죽었는지 밥은 얻어먹고 사는지 마음이 쓰였었는데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밥도 제대로 먹고살았는지 그리 말라 보이진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밥을 챙겨주니 먹고 나가버렸다.
지난 6월 장미 철조망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야옹거리며 울부짖던 아기를 꺼냈었는데, 그 녀석이 바로 솜이었다.
그리곤 며칠 있다 눈 가득 쌓인 마당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밥 챙겨주는 주인이 돌아왔다 생각했는지, 아니면 제 어미를 기억해 냈는지...
반가운 마음에 "솜이야 어디 갔다 왔어?" 챙겨주러 나가보니 날렵한 뒤태에 작은 방울이 달랑거린다.
"어머나 세상에 ~ 솜이는 수컷이었구나!" 처음으로 솜이의 뒤태를 보았다.
아기 때였고 워낙 까칠해 자세히 보지도 못했는데 왜 당연하게 암컷이라 여겼는지 모르겠다.
뒤태를 보이면서까지 이리저리 나대는 바람에 오늘에야 솜이가 수컷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약하고 여려 보여 당연히 암컷이라 생각했고 노란 털이 많아 "노랑이"라고 촌스럽다고 "솜이"라고 개명까지 했는데... 사실 동물 세계에선 수컷이 더 예쁘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삶은 계란을 반을 갈라 솜이 밥에 넣어준다. 삼색이는 삶은 계란에 이미 익숙해져 제 밥 다 먹고도 집에서 나와 남의 밥그릇을 깨작거리고 있는데, 솜이는 잘라준 달걀덩어리 하나를 마치 축구하듯(저는 평상시 사냥하던 습성이리라) 손으로 이리저리 굴려가며 장난을 친다. 삶은 달걀을 먹어보지 못해, 냄새는 비릿해 구미를 당기는데 뭔지 궁금하기도 했나 보다. 오랜만에 고양이 사냥하는 모습을 보니 새롭다.
삼색이는 집묘가 돼버린지라 밥때면 제집으로 들어가 밥그릇에 밥 채워주기를 기다린다. 얌전히 밥그릇의 밥을 비우고 옆에 물그릇에 있는 물을 먹고 입을 가신다. 물론 깜냥이와 콧털이도 밥그릇에 담아주는 그래로 잘 먹는데, 이런 모습에 익숙하다 삶은 달걀 한 조각을 요리조리 돌려대며 왔다 갔다 하다 먹는 솜이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맛은 있는지 밥그릇 쪽으로 오지만, 또 한 덩어리 덜어내어 양손으로 쥐 잡듯이 한다.
몇 달 집 비운사이 제 어미와다니다가 결국은 떨어져 살아남기 위해 개척해야만 했던 삶이 콧등의 상처자국과 꾀죄죄한 얼굴에서 그대로 보인다. 그래도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 성장한 모습도 보여주니 대견스럽기도 하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솜이는 "자유로운 묘생은 이런 거라 옹" 보여주기라도 하듯 바람처럼 눈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제가 오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놀이터 하나 더 확보한 듯 뿌듯하게, 바람 편에 인사말을 전한다.
하나 옹 ~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고정관념으로 남의 성별까지 바꾸냥?
둘이 옹 ~ 이 집 아니면 먹고살 곳 없을까 봐 걱정이냥?
셋이 옹 ~ 현재를 즐기고 산다는 인간이 쓸데없는(결국은?) 걱정으로 소중한 시간 낭비하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