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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r 14. 2024

고교시절의 로망을 실현해 보다 ~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두 번째 4화

현관문 옆 담벼락엔 미니온실이 있고, 옆엔 7년이 넘은 분홍작약이 있다. 아니다, 주말로 다닐 때 처음 심은 것이니 7년이 아니라 10년은 되었다.

분홍작약은 얼마나 잘 자랐는지 양팔로도 감당되지 않을 정도의 무성한 잎으로 여름이면 숲을 이룬다. 그런데 꽃은 너무 흐드러지고 커서 이쁘질 않았다. 지인들도 작약을 보고는 "꼭 머리 산발한 미친 여자(왜 미친 남자사람은 아니고 여자사람으로 묘사하는지?) 같아. 쟤 좀 어떻게 해 줘 봐!"

몇 해 전부터는 정말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매년 그대로 두고 말았다.

마땅히 옮길 곳도 적당치 않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러면서도 작년엔 아주 빨강 작약이라고 사서 향나무 주위에 심었는데 꽃도 못 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연락도 없다. ㅠ 우리 집 아이를 보고 작약은 무조건 잘 자라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나 보다.

용맹한 작약은 올봄에도 여지없이 굵고 붉은 촉들을 올려 보내기 시작했다.

"얘가 올해는 얼마나 더 울창한 숲을 이루려고?"

무성한 초록 숲에, 피자마자 꽃잎은 떨어지고 색이 바래지는 커다란 얼굴의 작약꽃이 그려진다.

"그래 ~ 파내어 옮겨보자. 네게도 내게도 변화가 필요하다. 네 뿌리가 깊으면 얼마나 깊겠니! "

기다릴 것도 없이 아침 산책 후 삽을 들고 시작했다.

생각보다 삽이 잘 들어가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번 삽질을 한 후 잡아당기니 "쑤~욱" 용트림을 하며 마침내 올라온다. 알뿌리가 얼마나 굵은지, " ~ 이게 산삼이라면 우리 집은 한밑천 장만하고도 남을 텐데 ~ " 말 같지도 않은 우스운 생각까지 하며 뿌리 나누기를 했다.

아이(아이가 아니라 이미 노인일지도 모르지만...) 뿌리가 너무 엉켜있어 여러 개로 나누지는 못하고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로 나누었다. 큰 것은 새로 들인 목수국옆에 심고 작은 것은 30cm분에 옮겨 심었다. 여름이면 지줏대를 몇 개씩 박아줘야 하는 작약인데, 시작하는 봄이라 너무도 단출하고 깔끔하게 올라와 나눠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공간에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가족이 이사했던 집이 지금도 가끔씩 생각다. 마당이 아주 넓은 집이어서 나무도 꽃도 많았고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창문 주위에 장미꽃이 많이 피어, 집안에서 창문을 열면 장미덩굴과 은은한 향으로 감격하곤 했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장미라기 보단 아마 월게꽃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내 집을 가지게 되면 이렇게 예쁘게 꾸며야지~" 하는 꿈도 꾸게 만들었던, 가족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이 듬뿍 서린 집이었다.

아파트에서야 그렇다 치고, 마당정원 있는 집으로 왔으면서 왜 진작 실행하지 못했지?

그럴 여유도 못 가지고 산 것인지, 앞마당이 좁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아무튼 현실로 만들지 못했던 사실 아닌가?

"그래 지금이라고 못할 것 없지 뭐"

사계 장미 한그루를 사각 아치와 함께 파내어 심고 주변에 구근류를 심기로 했다.

흙을 파다 보니 총각무만 한 작약뿌리가 나온다. "맞다 작약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도 쓰인다는데... "할 수 없지 뭐, 우리 밭에 좋은 비료 쓸 수밖에 ~" 즐겁게 작은 화단을 다듬으며 구근류를 옮겨온다.

정원곳곳에 무성하게 올라오는 튤립과 수선화를 파내다 몇 아이들은 잘라짐을 당하고 말았다. 구근류는 뿌리가 꽤 깊기에 조심스럽게 판다고 하면서도 결국 실수하고 만다. 튤립을 옮겨 심은 후 지난번에 산 알리움 로지움 구근 남은 것을 모두 심어주었다.

얼마 있으면 구근들이 올라와 예쁜 꽃을 피울 것이다.

장미를 더 심을까 하다, 큰 장미니 올해 자라는 것을 보고 하기로 다. 미니 정원을 만들어 주니 작약숲보단 훨씬 나아 보였다.

꿈 많던 고교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흰머리 나는 이제 이루는 작은 로망이지만,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엎었다 세웠다, 다시 들였다 이사 보냈다, 새로운 아이들도, 떠난 아이들도 언제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정원이다.

잊혔던 꿈도 다시 불러오고 앞으로의 꿈도 꾸게 만드는 곳이 나의 작은 정원이다.

방긋 웃던 월계꽃 대신, 활짝 웃는 향기로운 크리스티나가 올여름을 기쁘게 열어 줄 것이다.


~ 2024년 3월 12일 화요일,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따사로운 봄볕과 함께 함께 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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