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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Feb 25. 2024

봄의 전사, 구근을 향한 노래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두 번째 2화

2024년 2월 25일 눈 오는 흐린 날

한 주 내 내 눈이 온다. 긋지도 않고 전설의 고향에서 원 풀듯이 사근사근 내디디는 발걸음... 무섭기까지 한 하얀 발걸음이다. 아침이면 밤새 실컷 뿌려놓고 어디론가 달아나더니 오늘 아침엔 아직도다.

가던 걸음이 지체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 눈이 잠시 쉴 새 정원 여기저기 둘러보니, 튤립과 수선화 촉들이 어느새 많이 올라와 있었다.

기특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저희가 "포항초"쯤 된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눈 맞고 녹았다 다시 눈과 함께다. 2월 중순부터 그런 것 같다.

그래서 하직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버티고 이겨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해를 거듭하며 변덕이 심해가는 일기日氣에 맞춰 저희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구근球根아이들을 보면 가슴 한 편, 아련함이 머문다.



~ 봄의 전사 구근球根을 향한 노래 ~


어제는 온몸으로 여리게 인사하던 푸른 아이가

무겁고 하얀 솜이불에 고개도 못 내밀고 덮여있다.

목화솜 한 뭉치 뜯어내어 얼굴에 비벼본다.

너무 따뜻해 내 얼굴까지 녹여버린다.


젖은 창호지 하늘엔 노란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어질 듯 쳐져 있다.

조금만 참고 버틴다면 하늘이라도 뚫고 내려와, 온몸으로 너를 품어줄 것이다.

간밤의 하얗다 못해 시리기까지 했던 솜이불보다도 뜨겁게 품어 줄 것이다.

전사여!

그렇게 너는 사랑에 익다 녹다,

몇 날을 반복하며

누구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봄을 알릴 것이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철쭉 여느 소박한 봄친구들보다

맨살로 겪어낸 격동의 시간이 있었기에,

빨갛게 노랗게 보랏빛 주홍의

온갖 빛과 색으로 단련된 투구와 갑옷을 입고

찬란하고 인상 깊은 봄의 향연에서

세월을 향한 전사로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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