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꽃샘추위가 찾아온다고는 했지만, 하얀 눈이 제법 쌓일지는 몰랐다. 이른 아침 어제 옮겨 심은 튤립이 괜찮은지 확인한다. 작년 초겨울 처마밑에 심어둔 튤립들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데 비 오면 낙숫물이 너무 떨어져 열 촉을 패어 큰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화분주위를 짚으로 둘러주긴 했는데, 튤립사이로는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이만하면 해가 나면 녹으리라 ~ 괜찮을 거야" 다독이며, 밥 달라는냥이들을 돌본다.
그런데 삼색이가 뭔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배가 조금 줄어든 것 같고 엉덩이 쪽이 젖어 있었다.
"설마?" 고기와 밥을 넉넉히 비벼준 후, 야외 싱크대 밑으로 옮겨준 삼색이(솜이의 전용집이긴 하다) 집 커튼을 제치고 폰플래시를 켜서 보니 아! 뭔가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간밤에 새끼들을 낳은 것이다.
아기 냥이들이 놀랄까 봐 자세히 볼 수 없어 사진 한번 찍고 금방 플래시를 껐다.
"삼색아! 간밤에 큰 고생을 했구나 ~ 날 추운 줄만 알았지, 네가 아기를 낳은 것은 몰랐네~~"
고생했다고 얘기라도 하듯 삼색이는 옆에서 비벼댄다. 모두들 잠든 고요한 밤에 저 혼자서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낸 것이다. 미안하기도 대견하기도 해 얼굴과 등을 쓰다듬어주니 골골거린다.
삼색이도 재작년 겨울, 우리 집에서 태어나 아직 만 두 살도 안 됐는데, 벌써 두 번째 출산을 한 것이다.
작년여름에는 어디서 출산한 후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다들 어디론가 가고 남은 아이가 바로 솜이다. 그렇게 솜이와 삼색이 모자는 다정히 지금까지 지내고 있는데 삼색이가 또 임신을 한 것이다.
길냥이들의 삶이 그렇겠지만, 그래도 삼색이는 이 집이 제집인 것처럼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으니 함께 살고 있는 가족처럼 돌보고 있다.
작년 여름새끼들을 데리고 올 때는 염려도 많이 했지만, 길냥이 역시 자연의 일부라 자유롭게 살 것이라 생각하고 그저 집으로 찾아오는 생명은 내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돌보고 있다. 길냥이들을 돌보면서 "내려놓음"과 "미리 걱정하지 말 것" 등 익히 알고 있던 삶의 철학?을 실천, 수행하는 것까지 배우고 있으니 우리 길냥이들이 밥값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삼색이는 식사를 맛있게 하고 아기가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아침 운동을 마친 후 삼색이 집이 안전해 보이긴 해도 혹여라도 강아지들이 마당에서 놀 때 염려가 되어 돌판으로 입구를 살짝 가려줬다. 집 앞으로 다녀도, 비닐커튼을 열고 안을 들여다봐도 삼색이는 경계하지 않는 표정이다. 이렇게 온전히 신뢰하는데 돌봐주지 않을 수 없는 마음, 사람이나 동물이나 뭐든 제 하기 나름이다.
오히려 삼색이는 뭐가 아쉽기라도 한지 요구하는 표정이다.
"그래 ~ 산후조리를 해야지" 황태를 물에 불려놓고 비싸게 샀던 동결건조황태 칩을 줘도 솜이도 삼색이도 별로 반기질 않는다. 고양이캔 통조림을 덩어리채로 주니 먹는다. 황태는 깔끔? 하게비려서 인지, 냥아이들은 고양이전용 참치캔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그래도 황태를 푹 끓여 고기와 함께 간식으로라도 먹도록 해야겠다.
삼색이 아기들이 몇 인 지도 아직 모른다.
새끼냥이들이 발발거리고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도 적절하게 조절될 것이라 여기기로 한다. 우리는 그저 생명의 주관자께서 펼쳐가는 일에 일부분의 담당자로 택함을 받았을 뿐 아닌가.
하얀 눈과 함께 찾아온 새 생명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제 할바대로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올봄 꽃샘추위는 왠지, 마당을 채우고 있는 생명들에게 보약 같은 거름이 되어,찾아온 봄과 함께 펼쳐질 형형색색 생명의 신비를더 아름답게 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겨주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