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만 거짓말쟁이였네

죽은 줄 알았던 아스파라거스가 나왔다

by opera




흐리고 비도 제대로 내리지 않고 찌뿌둥했던, 어제보단 맑은 아침을 기대하며 마당으로 나간다. 약간 안개가 끼여, 오늘도 그리 맑진 않다. 스트레칭하고 아침 운동을 한다. 간밤에 추웠어도 초목들은 제 몫을 다한다. 상추와 토마토 모종, 가지 모종도 늘어져 있지 않으니, 냉해를 입은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아주 작은 아스파라거스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제도 안 보였는데... 3월 초에 작은 거 5개 심고, 네 개밖에 안 나와 하나는 포기했는데 결국은 다 나온 것이다. 18,000원 주고 산 5년생 굵은 것은 뿌리를 잘 내리고, 옆으로 삐죽하니 두 개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쩌면 올해는 아스파라거스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땅이 기름진 윗집은 벌써 잘라먹었다고 하지만, 맨살뿐인 우리 마당으로썬 언감생심이다.


아파트에 살 때나 마당 있는 집에 살 때나, 해마다 꼭 사게 되는 것이 로즈메리(로즈마리, Rosemary)다. 그리고 해마다 죽이는 것도(아니 죽이는 게 아니라, 살기 싫어 스스로 죽는 것 같기도 하다) 로즈메리다. 매년 실패를 해도 로즈메리의 향기를 포기할 순 없다. 올봄에도 로즈메리 화분 새로 하나 샀다. 햇볕 잘 드는 마당 앞쪽에 심었다. 올해는 꼭 살려보리라 결심해본다만, 물 주는 것 외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올여름은 식구들과 고기라도 조금 구워 먹을 때 아스파라거스와 로즈마리 덕분에 좀 더 우아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상상도 해본다.


20210417_081553.jpg
20210417_081604.jpg




아침 마당은 또 다른 기쁨을 준다. 죽은 줄 알았던 작은 홍도화가 촉을 내밀고 분홍 꽃몽우리를 머금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눈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이제 지려고까지 하는데 매일 확인해도 죽은 가지처럼 보이던 아이였다. 작년 겨울바람이 하도 모질어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갔나 보다 생각했다. 그래도 올해까지는 "두고 보리라"고 포기했던 나무였다. 그런데, 정말 작은 잎이 조금 나오고, 옆에는 빨간 꽃 몽우리가 비친다. 살아났다! 아니 살아있었던 것을 못 봤던 것이다. 마른 가지 속에 품고 있었던 생명력을...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초목들은 어떤 고난이 와도 핑계 안 대고, 저마다 난 몫의 본분을 결국은 해낸다. 저 아이가 어떻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잎을 키워가며 올여름을 살아가는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봐야 되겠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조금만 달라지면 변했다 생각하고, 조금만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섭섭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간사한 성정이 부끄러울 뿐이다.


20210417_083042.jpg
20210417_083045.jpg


새로 심은 나무엔 물 많이 줘야 한다고 해서 열심히 물 준다. 물을 주다 쪼그리고 앉아, 땅에 스미는 모습을 본다. 새로 심은 녀석한테 많이 가라고 주지만, 덕을 보는 건 옆에 심은 얘기 목단인 듯싶다. 흘러 들어가면 결국 온 땅에 스며든다. 어릴 때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한 곳에 고여 있지 않는다. 흘러서 결국에는 모두가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내 것" "네 것" 따지는 것은 사람밖에 없는 것 같다. 동물들도 사냥을 하고 먼저 먹고 나면, 나머지는 다른 종족이 와서 또 먹는다. 그런 사이클로 자연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 것이라고 축적해 놓고 선을 긋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자연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인간이 배워야 할 점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0210417_084429.jpg



욕심만 조금 버리면 시골살이도 나쁘지 않다. 눈과 귀를 조금 더 투박한 곳에 투자한다 치면 말이다. 엄청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이 벌 생각도 안 하니까, 이렇게 쉬는 동안에 마음도 머리 속도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져, 더 맑고 환하게 됐으면 좋겠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단순한 섭리로 정화되면 좋겠다. 앞집에 함께 심은, 서부 해당화가 고개 숙인 모습으로 겸손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조금 더 큰 홍매화는 이제야 꽃이 피는데 겹꽃이다. 아주 예쁘다. 꽃도 나무도 상추도 토마토도 아스파라거스도... 마당에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사기 치는 것은 없다. 심은 대로 나고, 물주는 대로 살이 오르며 반응한다. 한두 달 동안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워도 결국은 고개를 들고 나온다. 오직 바라보고 있는 나 같은 인간만 사기 칠 뿐이다. 오늘 "물 주마"했는데 그냥 넘어가고, 바쁘고 귀찮으니, 풀도 내일 뽑지 뭐. 꽃이 예쁘게 피어주길 바라면서, 채마밭의 채소들도 풍성하게 자라주길 바라면서, 정성 들여 보살펴야 할 마음은 기분에 따라 제대로 안될 때도 많으니, 나야말로 거짓말쟁이다. 땅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짐하며, 앞으로는 약속 잘 지킬게. 올여름 우리 마음을 풍성하게 해 줘. 우리 가족 식탁 풍성하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Think out of the 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