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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out of the box...

지는 튤립을 바라보며

by opera




튤립이 활짝 피어 이제 시들려고 한다. 그래도 워낙 꼿꼿한 꽃이라 시든 표도, 별로 나진 않는다. 마침 동네 사는 친구가 조카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해서, 튤립 정원에서 사진 찍겠냐고 물어보니 그러겠다고 한다. "언제 올래? 오후에 올래?"

" 지금 갈게" 나는 컴퓨터 작업을 중단하고 마당으로 나간다. 마당 한쪽에 둔 주물로 만든 정원 테이블과 앉힐 의자를, 튤립 정원 앞으로 옮겨 놓는다. 예쁘게 사진 찍어 주려고 장소를 만들고, 주변 풀도 뽑고, 이것 저것 손질을 한다. 30분이 지난다. 아직도 안 올라온다

"아니 5분 거린데, 왜 아직이야" 전화하려다, 어린 조카 데려오려니 뭐 챙길게 많나 보다 하고 기다린다. 20분이 더 지난다. 친구는 원래 조금 느린 편이긴 하다. 나는 내려간다 하면, 당장 내려간다.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편이다. 일하다 나왔기에 슬슬 열이 받는다. "그럼, 천천히 올라온다고 얘기나 하지... 금방 온다 해놓고는..."



기다리다 튤립 앞 의자에 내가 앉는다. 그쪽으로 앉아서 자세히 보긴 처음이었다. 매일 물을 주면서 목단 쪽은 쪼그리고 앉아 봤는데(특히 고개 숙인 금각), 튤립을 이렇게 자세히 보진 않았다. 의자에 앉아 여유를 가지고 보니 참 예쁘다. 튤립은 워낙 화려하고 분명한 꽃이라 멀리 있어도 눈에 확 들어온다. 그래서 자세히 보진 않았다. 질 때가 다 되어서야 자세히 보니 색도 예쁘고 선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커다란 한송이가 시원스럽게 생긴 아름다운 꽃이었다.


올봄에도 꽃을 제법 산 것 같다. 아니 많이 샀다. 심을 때는 "내년엔 안 심어야지" 하면서도 봄만 오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예쁜 꽃이나, 나무가 없나 찾아보게 된다. 욕심이기도 하고 사는 맛이기도 하다. 박태기나무 산딸나무 모과나무, 작은 아이들이긴 하지만 새로 들였다. 그런데 심을 줄만 알았지 누리고 즐길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저 마당을 예쁘게 생동하는 봄의 색깔들이 깔리게 꾸밀 줄만 알았지, 정작 내가 보고 즐기진 못한 것이다.


왜 그렇게 가꾸려 애쓸까? 남들이 보기에 예쁜 마당? 꼭 그런 건 아니었는데... 모처럼 의자에 편히 앉아 튤립도 보고, 목단도 보니 꽃몽우리를 참 많이도 맺었다. 고개 숙인 금각은 여전하지만, 원래 있던 목단 중 몸이 좀 굽은 큰 녀석은 해마다 많은 꽃을 피운다. 자세히 세어 보니, 일곱 송이도 더 되는 것 같다. 그 옆에 작은 녀석은 아홉 개가 넘는 꽃몽우리를 달고 있다.


모란꽃은 4월에 꽃 몽우리를 맺어서 오월이면 활짝 피었다가, 일이 주일 정도 지나면 큰 꽃이 다 흩어진다. 마치 목련 같다. 성이 "목" 씨라 같은 성향인가? 목련은 목련과에 속한 '낙엽활엽교목", 목단(모란)은 작약과에 속한 "낙엽활엽교목"이다. 같은 "낙엽활엽교목"이니, 내 우스개 소리가 전혀 실없는 건 아닌가 보다.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버린 그 자리엔 씨앗이 자리 잡고 자라기 시작한다. 여름 내내 씨앗을 품고 자란 목단은, 가을이 되면 입을 벌려, 까만 콩알 같은 씨를 내어준다. 미처 거두지 못한 씨앗들은 몰래 떨어져, 봄이면 여기저기서 싹을 틔운다. 눈에 띄는 녀셕도, 눈에 못 띈 아이도 제각가의 삶을 살아간다. 친구 기다리며 오랜만에 한생명의 주기도 생각해 본다.


우리 마당엔 의자가 많은 편이다. 다른 집에 비해선 여러 개다. 물론 비싼 의자는 없다. 스틸로 만든, 눈비가 와도 끄떡없는 실용적인 의자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코스트코는 애정 하는 곳이 되었다. 의자를 많이 놓는 이유는 한 가지다. "쉼을 가지자"는 것이다. 육체적인 쉼을 의미하는 것보다는 "살아가면서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보자"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 넓은 마당은 아니지만, 걷다가 앉아 쉬고 돌아보고, 함께 다시 갔다가 돌아오면서 쉬는 의미를 둔 것이다. 이웃 지인들이 와도 언제나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머물 수 있는 곳을 두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잘 앉아 쉬질 못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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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앉아 다른 사물들을 보니, 즐기기보단 만드는 데, 가꾸는데만 열중한 것 같다. 문득 "Think out of the box"가 생각난다. 21세기를 여는 혁신의 아이콘 같은 스마트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어쩌면 잡스 이전에도 많이 했던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자아를 탈피해 새로운 세상을 찾고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살았던가.


짬짬이 강의할 때도 늘 얘기를 하곤 했다. 다소 뜬금없을진 몰라도, "유체이탈"이란 말로 재밌게 설명하고자도 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한 번씩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고, 점검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거울이 없었다면 자신의 모습을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벗어난 자신이다. 거울 속의 나에게 생각하는 힘을 넣어준다면, 자신의 다른 모습과 새로운 면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think!, out of me? "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이다.


"뭔가 바쁜 일 이 있었겠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야" 매사가 그런 사람은 늘 그렇다. 그리고 사실 들어보면 뭐 그럴 만한 이유 이기도 했고, 엄청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약속은 어기지도 않았다는 말도 맞다. 돌이켜보면 참 빡빡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거리가 생겨버린 동료들도 있다. 그들의 관점에선 내가 빡빡했을지 모른다. 그들을 잃지 않으려, 나를 버리고 맞춘 적도 많았다. 나를 버리고 타인이 되어 나를 보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갈 사람은 가고, 내 성정은 내 성정으로 남았다. 변하고자 노력하는 내가 변한 것이지, 타인의 의식은 결코 바꿀 수가 없는 법이다. 미드 csi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거기 나온 주인공들이 "쿨(so cool)"하기 때문이다. "일"은 "일"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인 것이 인정된다. 드라마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만... 우리 사회에선 아직 어려운 일이다. "감정"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고치려고 애쓰느니, 내가 바뀌는 게 낫다. 갈 사람은 언제라도 갈 것이고, 올 사람은 오게 마련이다.


오늘 아침 친구의 약속 지체 덕에, 튤립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나를 벗어나, 서 있는 나를 본다. 이제 튤립이 지려고 한다. 몽우리가 나올 때부터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이렇게 환하고 꼿꼿하게, 목이 긴 사슴처럼 장성하기까지 삼사월 근 두 달, 우리 마당을 밝혀주고, 가족을 즐겁게 해 준 고마운 친구다. 올 가을에도 코스트코에서 파는 구근을 꼭 사다 심어야겠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데미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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