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셔츠와 오래된 회중시계가 보내는 덕담

by opera

해마다 겨울이면 한 번씩 꺼내 입는 셔츠가 있다. 명동에 있던 지금은 없어진 쁘렝땅백화점에서 샀던 체크무늬가 있는 남방셔츠다. 초록색과 체크무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맞는 셔츠라 구입해, 겨울이면 즐겨 입었다. 세월이 지나며 처음 구입했을 때의 흘러내리던 윤기는 사그라들었고 목 주변과 소매 쪽이 낡아져 속살이 조금씩 드러나 자주 입기가 조심스러워졌다. 더 주의해서 입어도 계속 입을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메이커는 아직도 똘똘하게 보이지만, 그건 큰 의미가 없다. 좋아하는 디자인(색, 모양 등)에 꽂혔었고 옷감이 좋아 그랬는진 몰라도 생명력이 있어 보여 손이 갔을 뿐이다.


언젠가 입는 옷을 작품처럼 벽에 디스플레이한 것을 어느 미술관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문득 나의 이 낡고 오래된 셔츠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면 세월을 거스르는 하나의 멋진 생활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셔츠지만, 이 아이는 아직 제 색은 당당히 유지하고 있어, 잘 보존해 더 오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요즘처럼 변화무쌍하고 새로운, 멋진 디자인이 쏟아져 나와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세상에서 서른 해가 넘도록 곁에서 성장해 준 아이니, 문득 고맙다는 글 한편은 쓰고 싶었다.


먼저는 오랜 세월에도 바래지 않고 첫눈에 들었던 고운 색감을 면면히 유지해 줘서 고맙다.

두 번째로는 낡아져도 격이 있고 품위 있게 닳아진 모습이다. 그를 지탱하는 부분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조금씩 헤어져가고 있지만, 몸뚱이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한 가지 더 곁들인다면 재질도 중요하긴 하다. 옷감이 좋아 오래되어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에...

사람의 품성, 성품을 변화시키기는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인격은 옷감처럼 사람의 속을 지탱시키는 기둥이며 하루아침에 완성되지도 않는다. 좋은 옷감이 오래 변하지 않는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대입이긴 하지만, 평소의 갈고닦은 인격(인성)의 중요함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도 만드니 고마운 일이다.


나이 들어도 자신의 소명과 빛을 잃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성숙해 가는 인격으로 자신은 물론 주위를 평안케 하며, 어제보다 살짝 더 주름져 보이는 듯한 모습에도 당당한 청춘의 품위를 지키게 만드는 멋진 남방셔츠 하나에 여러 생각을 포개어 가치를 더 해 본다. 지금처럼 나는 아마도 오랫동안 곁에 두고 한 번씩 입으며 새겨 볼 것 같다.


몇 해 전 이베이옥션에서 구입한 백 년 된 태엽 감는 회중시계가 하나 있다. 재질이 은이라 시간이 지나면 공기 중에 변색되어 거무스름하게 변한다. 그럴 때마다 치약을 한 번씩 묻혀 닦아주면 원래 제 살을 드러낸다. 진짜의 맛이라고나 할까? 태엽을 감아주면 여전히 "째깍째깍" 소리를 힘차게 낸다. 마치 목적지를 향해 힘찬 발걸음으로 달려 나가는 말발굽 소리 같다.

책상 위에 두고 마음이 늘어질 때면 한 번씩 태엽을 감아주곤 소리를 듣는다.

백 년 전이란 내 삶과는 상관없었던 누군가의 시절이었다. 비록 작은 물건이긴 해도 그 누군가들과 백 년 후의 지금 세상에서 공유한다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울 뿐이다.

오래된 시계는 무생물이 아니다. "오래됨"을 "한결같이" 승화시킨 순간, 이미 하나의 생명으로 온몸을 양옆으로 움직이며 흔들거리고 있다. 태엽을 감아주면, 마치 막 사료를 먹은 가축들처럼 "째깍째깍" 요란한 움직임을 내며, 하루라는 세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하루라는 쪼개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리는 약해지고, 매달린 시계의 움직임도 약해진다.

다시 태엽을 감아준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거부할 수도 물릴 수도 돌릴 수도 없는 시간, 하루 24시간을 작은 회중시계는 오직 나만이 관장하고 온전히 누리고 갈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을 준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이어주는 소중한 순간순간이, 백여 년 전 누군가도 아끼고 만끽했을 순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역사 속의 인류라는 동질감과 주어진 시간의 주인공으로 겸허히 살아가야 한다는 각오까지 하게 만든다.


오래된 것이라고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것 들 중에선 골동품(antique)도 있지만, 고물도 있다. 나는 골동품으로 나이 들어갈지, 고물로 늙어가지는 않을지... 우스운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다행스레 골동품으로 세월을 맞는다 해도, 그것조차 나의 감정(鑑定)인지, 전문가의 감정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지만, 골동품이든 고물이든, 분간할 수 있고 내게로 온 그들로 인해 평범한 하루의 일상이라도 감사하며 되짚고 나아갈 수 있는 계기도 만들게 하니 고맙지 않은가...


낡은 셔츠는 세월과 상관없이 제 몸을 한 올 한 올 소진시켜 가며 살아 낸, 살아갈 모습을 경건하게 보여준다.

백 년이 넘은 회중시계는 자신의 소명을 위해선 세월조차 무의미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역사와 고전으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낡고 오래된 물건들 속에 잠시 위안을 얻는다.

저희들처럼, 세월과 시선에 연연하지 말고 격이 있게 품위 있게 순간과 함께 하라는 덕담도 얻는다.

나도 너희처럼 격이 있게, 품위 있게 세월을

목과 소매깃이 곱게 나이 들어가는 서른 살 셔츠

백 년 동안 면면히 이어온 아름다운 회중시계, 아직도 빛나는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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