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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꽃 오는 꽃

카르페 디엠

by opera




하룻밤 새에 꽃밭이 환하게 되었다면 거짓일까 사실일까. 아침 문을 열고 나가니, 목단 꽃이 군락(조금 과한 표현이긴 하다)을 이루었다. 나는 밤새 뒤척이며 자느라고 정신없었는데, 이 아이들은 까만 밤에 열일을 했구나!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저께 한송이 틔우고, 어제 낮에 벌들이 꽃송이 주위에서 열심히 꿀을 빨았다. 벌에 쏘일까 봐 조심하며 물을 줄 때까지 한송이 핀 상태였고, 옆에 조금 벌어지려 했었다. 간 밤에도 마당 한 바퀴 돌며 걸을 때도 이렇게 피진 않았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부끄러웠는지, 한 밤중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세상을 향한 하얀 문을 연 것이다. 마당이 환하다

"너희 바람대로 환해졌어"

그런데 옆의 튤립은 지고 있다. 꼿꼿하게 세웠던 목대는 그대로 있지만, 몸뚱이는 이미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튤립은 두근거리던 3월과 환하게 빛나던 4월을 주더니, 이제 목단에게 자리를 내주고 떨어진다. 마음이 울컥한다. 마치 살아온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아프다. 그렇게 세차게 불어대던 봄바람에도 꼿꼿이 제 자리를 지키던 아이였다. 마당에 튤립이 제법 많은지라, 한동안 튤립 잎들이 흩날릴 것이다. 몸뚱이를 벗어난 꽃잎들은 아름답지 않다. 치워야 할 쓰레기로 보일 때가 많다. 저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던 꽃이었던가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마당이기에 새로 피고, 떨어져 가는 꽃이 원색적으로 어우러져 있어도 전혀 괴리감이 없다. 이것이 자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식탁 위 튤립 잎도 떨어져 있었다. 나는 눈도 비비지 않은 채 마당에 나가 조금 멀쩡한 아이들을 잘라와 다시 꽂았다. 지는 꽃은 가지만, 간다고 아주 가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디디고 있는 땅속에서 내년을 기약하는 희망의 뿌리를 둥글게 만들고 있다. 지는 꽃도 위안을 준다.


목단은 일주일을 밝힐까? 열흘을 갈까. 얘들은 제 인생 중에 가장 화려하게 멋있는 날들을 이제부터 즐길 것이다. 풍성하고 화사한 꽃송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목단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것이다. 피는 꽃이라고 계속 피는 것도 아니다. 오늘 활짝 핀 목단도 떨어질 꽃잎을 품고 있다. 열흘 후면 아쉽지만, 하얗고 풍성한 꽃송이들도 튤립처럼 떠나 내년을 기약하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살아있는 오늘 이 순간 목단도, 나도, 우리 작은 마당과 어우어져 현재를 즐기면 된다.




우연일까..

cbs FM에서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김용호 시, 조두남 곡) 가곡이 흘러나온다.


모란꽃 피는 유월이 오면

또 한송이의 꽃 나의 모란

추억은 아름다워 밉도록 아름다워

해마다 해마다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또 한송이의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행여나 올까 창문을 열면

또 한송이의 꽃 나의 모란

기다려 마음 조려 애타게 마음 조려

이 밤도 이 밤도 달빛을 안고 피는 꽃

또 한송이의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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