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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꿀벌을 죽였다?

모진 바람 불었던 날 꿀벌의 일생

by opera




이른 저녁 후 마당에 나갔다. 바람이 너무 불어 여기저기 흔들리는 튤립과 여린 가지들을 받쳐놓은 지지대를 점검하고, 한 군데는 다시 세워준다. 목단꽃 향기가 좋다는 윗집 지인의 말대로 향기를 맡아보려고, 하얀 꽃송이를 들추다가 기겁을 했다. 바람에 여린 잎들이 뒤엉켜져 있는데, 꽃봉오리 안쪽 꽃술에 꿀벌 두 마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코에 벌침 맞을 뻔했던 것이다. "엄마야" 깜짝 놀라 뒷걸음쳐서 나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벌은 안 나온 듯했다. 처음엔 아직도 꿀을 채취하느라 정신없어 나를 못 본 줄 알았다.


벌들이 꽃술에서 열심히 일 하느라 못 나온 건지, 아니면 꽃향기에 취해 못 떠난 건지, 꽃 속에 있을 때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여리고 촉촉한 잎들이 엉켜져 꽃을 덮어 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질식사?" 꽃술에서 꿀 따던 작업을 하던 벌꿀들은 바람에 꽃잎이 엉켜진 것도 모른 채, 그만 갇혀 버린 것이다. 언제 갇혔는지도 모르겠다. 낮에 목단꽃 주위에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은 분명히 봤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몇 시간을 갇혀 있었단 말인가... 이제 보니 벌들이 나를 봤을 때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몽롱한 상태였던 것이다.


나갔는지 있는지도 분명치 않고 늘어진 잎이 다시 닫혔나 싶어, 그냥 들어가려다 긴 지지대 하나를 들어 잎을 흔들어 본다. 벌이 나갔는지 미동도 없다. 다시 꽃술이 있는 중심을 향해 흔들며 꽃잎을 벌려본다. 그 순간 한 마리가 날았다. "아 있었구나" 녀석은 떨어지는가 싶더니, 금세 윗 쪽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조금 멀리서 봐도 다른 한 마리는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나오지 않는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아직 살아있었다. 지지대로 꽃잎을 더 벌려가며 흔들었더니 나온다. 그런데, 조금 높게 나는가 싶더니, 튤립 쪽으로 떨어지고 만다. 명색이 "벌"인지라, 튤립을 헤쳐가며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진 못한다. 잠시 있어봐도 다시 날아오르지 않으니, 아마 꽃잎 속에 갇혀 있었을 때 이미 중한 상태였던 것 같다. 아마도 저 녀석은 튤립밭의 거름이 되기 위해 제 몸을 던졌는지 모른다.


바람이 모질게 불어 꽃잎을 엉키게 해, 제 일에 열심인 꿀벌을 가두었으니 모진 바람의 잘못인가. 바람이 그렇게 불도록 정신없이 꿀을 빨면서, 꽃잎이 닫히리라고는 생각 못한 꿀벌 자신의 무지 탓인가. 아무리 바람이 심하다 한들, 저희 몸속에서 꽃가루를 날라줘 제 자손을 퍼트리는 역할을 해주는 이웃을 모질게 닫아버린 꽃송이의 잘못인가. 죽어도 꽃잎 속에서, 좋아하는 꽃술 때문에 죽었으니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봄이면 여기저기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생명의 순환을 위해 얘 쓰는 보이지 않는 꿀벌이 꽃잎 속에 갇혀 죽을 수 도 있는 것은 몰랐다. 저를 먹여 살리는 꽃송이가 저를 죽이는 꽃송이로 될 줄은 몰랐다.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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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도, 생명의 꺼져감도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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