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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기 Oct 09. 2020

인생 담기


    바로크 문양이 거울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화장대는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안방 모서리 한편에 앉아 있다. 화장대 서랍 가장 깊은 곳에 빛바랜 검정 카메라가 숨어 있있다.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쓴 채 앉아 있는 코끼리코를 닮은 카메라를 꺼낸다. 먼지를 털고 유리도 닦아준다. 이내 반질반질한 얼굴이 된다. 내 마음은 함께 환하게 밝아온다.

   아내와 결혼을 1996년에 했으니 벌써 24년 전의 일이다. 당시 ‘카메라‘라고 하기보다는 ’ 사진기‘라고 보통 불렀다. 후지, 코닥필름을 넣어 찍는 사진기는 낭만 신혼기에 필수품이었다.
없는 살림에 겨우 결혼을 했고, 회사 사택에 신접살림을 차린 지 두 해가 지나 그 카메라를 구입하였다. 그것은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마련한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이었다. 어떤 이는 돈을 모아서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진기였다.

   카메라는 대략 6년 정도의 필름 추억을 담은 것 같다. 아직도 앨범 속에 간직한 개나리 담장 아래서 찍은 어색한 사진들은 웃음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딸을 낳고 두 살 무렵까지의 사진이 남아있다. 그 후 디지털카메라를 마련했었는데, 그것으로 찍은 사진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쉽게 찍고 가볍게 담아낸 추억만큼 잊히는 것도 쉬웠던 것 같다. 아이러니가 아닌가.  정작 남아있어야 할 신식은 사라지고, 구식만이 남아 있으니 아마도 이래서 추억이 아름답다 하였나 보다.  그 많은 사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다시 복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얻은 만큼 쉽게 잊히는 것이 진리인 것 같다.

    4차 산업이다 AI의 생활화다 하여 디지털 문화의 흔한 일상 속에서 나의 근원이 어디며, 나의 시작은 어디였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이 그 시절 그 카메라로 담았던 추억들이다. 핸드폰 카메라는 언제 어디서나 바로 찍어 볼 수 있고 공유도 쉽게 한다. 24장짜리 필름 카메라는 찍은 사진을 바로 볼 수 없다. 며칠이 지나 사진인화를 하고서야 지난 추억으로 다시 새록새록 기억으로 솟아나는, 그 시절 인화사진은 아직까지 가슴 저 밑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이따금씩 흐뭇한 미소를 짓게 다.

   CCTV, 몰카, 블랙박스, 내시경, 위성카메라,드론이  정보화시대의 총아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는 감시용 카메라는 추억을 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범인을 추적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사진기 시절 카메라는 추억을 담는 그윽한 미소의 눈이었다면 지금의 카메라는 살피고, 경계하는, 쉼 없이 눈동자가 움직이는 불안한 눈이다. 도처에 눈이 많다. 도시의 눈은 잠들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감시 카메라를 보고 안정을 찾고 안심을 한다. 이미 현대 문명의 이기에 물든 도구적 이성은 이를 물리치지 못한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나. 지금 행복해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수없이 우리 가족을 카메라 앞에 서게 했고, 지금까지 큰 시련 없이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카메라는 고향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손짓하는 아버지다. 지금은 돌아가셨고, 고향집은 사라져 버렸지만, 나의 뿌리이고 기억 속 아련한 그리움을 전해주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은 말하였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쩌면 사진은 한 사람의 일생을 담으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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