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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기 Jan 29. 2021

내속에 갇힌 나

무엇이 나를 이토록 방어하도록 만들었을까?

사람에게는 마지막 하나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진시황제에게 있어 출생의 비밀은 그의 마지막 하나인 역린이었다. [더 리더]에서 여자 주인공  한나는 자신이 문맹자임을 밝히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하나였던 셈이다. 수년을 글을 쓰며 작가 소릴 듣고 사는 사람에게 맞춤법 하나 제대로 못 맞추란 말은 사람에겐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마지막 하나일 수도 있다.
감추고 싶고 남이 모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마지막 하나를 누군가가 건드릴 때 인간은 극한의 상황을 각오하며 자신을 방어한다.

공고, 공대, 제조업 21년 차로 기름밥으로 잔뼈가 굵은 나는, 내가 만드는 제품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 산다. 우리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감에는 심하게 발끈했으며, 결국 거래 관계를 정리하면서까지 내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 과민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하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지키고 싶었다.

지난 독서 토론모임에서 나의 이러한 심정을 밝힌 적이 있다. 지나치게 무모하고, 생각이 없는 행동이며, 이성을 갖고 볼 때 잘못이라는 것을 알다. 하지만, 오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는가!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침해당했을 때, 그것에 대한 나의 방어 자세는 매우 극단적이고 파괴적이며 이후의 결과를 생각지 못하는 무모함 그 자체였다.
그렇다! 마음을 다스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또 한 번 경험하고 깨달은 것이다.

평소 생각이 깊고, 남 얘기를 잘 들어주며, 어느 쪽으로도 판단이 기울지 않고, 합리적이며, 변화에 유연함을 가진 "나"였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자기 속에 갇혀 있는 나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오늘이었다.

과연 나는 변할 수 있을까?

지식으로는 변할 수 없다. 쌓여만 가는 지식은 더욱 철저하게 나를 나의 철옹성 안으로 꼭꼭 가두어 버린다. 깊은 반성을 바탕으로 사유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얕은 깨달음뿐인 내가 아닌, 깊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깊게 새겨진 나만의 가치 기준은 결국 나를 중심으로 하는 생각에서 멈출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을 친구에게 미안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주어져서 나를 발견하는 기회를 얻게 되어 다행이다.

작년 강원도 정선에 행을 간 적이 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가게 된 그곳에서까지 논쟁을 벌이며, 자기 속에 철저히 갇힌 그를 비난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를 비난하던 나에게 그와 똑같은 내가 있음을 이제는 알았다.

철저하게 자기 속에 갇혀 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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