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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네 Mar 07. 2021

소녀박 그녀와 쇼핑

어제 만난 사람

나보다 나이가 스무 살 많은 소녀박은 나의 친구이다. 총기 가득한 눈동자는 사춘기 소녀처럼 구르는 낙엽에 눈물을 흘린 것 같은 순진함도 감돈다. 그녀는 사랑스런 얼굴로 TV조선의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화가 난다고 했다. 

기분이 너무 울쩍해서 쇼핑을 하고 싶은데 시간을 내어 달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쇼핑을 하자는 그녀의 제안에 점심은 다음 기회에 소환해 달라하고 오후에 만나 쇼핑을 했다. 작년 가을에 쇼핑을 함께 하고 싶다는 제안을 코로나로 핑계삼아 거절한 터라 바로 시간을 잡은 것이다. 

디자인과 색감, 가성비를 따지며 쇼핑을 주도하는 나의 순발력과 권유에 만족해진 그녀는 내게도 옷을 사주고 싶어했다. 순간, 시간을 내 준 나의 선의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그녀의 감사를 넙죽 받을 뻔 했다. 오랜만에 쇼핑을 하다보니 예쁜 옷들이 너무 많아서 눈이 돌아갈 뻔했다. 

하지만, '1년 동안 옷 안 사입기' 라는 나만의 프로젝트가 작년 8월에 시작했으니 아직 5개월이나 남았다고 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코로나19로 체감하면서  소비생활에 대한 반성과 조금은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 그래서 미래세대를 위해 행동으로 옮긴 것이 '1년 동안 온 안 사입기'였다. 

6개월 남짓 실천한 나만의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일상이 쇼핑이고 소비였던 내 자신의 변화가 코로나 덕분인지 만남도 외출도 줄어들어 실천이 수월했다. 그런데 오늘 소녀박과 본격적인 쇼핑을 하다보니 잠자던 소비욕구와 쇼핑충동이 되살아날 뻔 했다. 

기분을 우울하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묻지를 못 했지만 오늘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녀와의 시간과 미소를 나누었으니 다행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늘상 시간을 내어 줄 수는 없지만 계절이 바뀔 때 한번 씩은 소녀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를 위로하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계속해서 마련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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