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네 Mar 04. 2021

친절한 면접 메뉴얼

어제 만난 사람

  당초 개인별 비대면 면접이 예정됐던 시간보다 10분, 20분, 30분, 40분이 지나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첫 대면에 찡그리거나 기다리다 지친 표정을 지으면 안 되니까 어떻게 하면 웃는 얼굴로 마주할까 생각하다가 이 순간을 감사하기로 했다. 기다림을 감사하기로 했다. 평가이든 칭찬이든 이렇게 관심의 대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강사 면접을 비대면으로 하기 위해 기다린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쉽게 말하는 '실전에 강하다'는 말이 내게는 참 먼 이야기다. 실전에 이렇게 담담해지니 그것도 참 문제다. 요즘 말하는 절실함이 부족한 것인지 어쩌면 실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기 소개와 프로그램 소개를 1분 내로 하라고 했다. 아, 준비해야 할 것이 그거였구나! PPT와 동영상, 강의계획서에 세세하게 만들어 냈는데 그게 왜 다시 말로 필요한 지 몰랐다. 간략하게 20초 내외로 내 소개만 했다. 순간 면접자가 당황했다. 그러더니 다음 질문을 했다. 

  교육 목표를 정량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했다. '정량적이라' 그렇지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 지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겠구나. 그런데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수강생들이 해야 할 것인데 그걸 어떻게 정량적으로 말하지 싶었다. 내가 난감해 하자 질문을 한 면접자가 다시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선생님 강의를 듣고 나면 글쓰기를 배운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죠? 100명의 사람들이 글쓰기를 배우면 몇 사람이나 책 한 권을 낼 수 있죠?"

  아, 나도 못 낸 책을 꼴랑 6개월 남짓 내게서 배운 사람들이 책을 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어리석은 답변이 시작되었다. 

  " 친절한 글쓰기를 배우면 A4 1쪽을 10분 안에 채울 수 있게는 하겠습니다. "

사실 A4 한 장을 채우는 일이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글을 써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면접자는 도통 성이 차지 않은 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친절한 글쓰기가 막연하지 않습니까?"

면접자의 재촉에 나도 한 마디 하였다. 

  "제가 글쓰기에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글쓰기 기능입니다. 그런데 책을 내는 것은 재능이 필요한 일입니다. 1년 남짓 글쓰기를 배워서 책을 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만약 100명 중에 5명 정도가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제가 맥락을 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

얼굴에 답답하다는 표정이 역력하자 다음 면접자가 질문을 이어갔다. 

"비대면으로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치신다는 건가요? 자신만의 방법이 따로 있나요? 첨삭 머 그런 거 피드백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신다고 하시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모르겠네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내 스스로 서운하지 않기 위해 부연을 했다.

"글쓰기에서 형식을 평가하고 첨삭하기 위해 글쓰기를 가르치려는 것 아니고요. 글쓰기를 통해 갈등의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는 치유의 과정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내가 제출한 프로그램 관련 자료를 전혀 보지 않았구나? 글쓰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구나! 나보다 똑똑하고 고수인 사람들 앞에서 면접을 봤을 때랑은 또 다른 허탈함이 밀려왔다.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그럼, 화면공유랑 이거이거 해 보실 수 있나요?"

  그래 웃으면서 감사해 하자. 이 순간이 내게 온 것에 대해 감사하자. 계속 웃으며 천천히 실행을 했다. 

시간이 없다면 7-8분 남짓 이루어진 면접은 서둘러 끝이났다. 나가라고 했다. 비대면 회의실을 나오면 그래도 한 고개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올해의 목표는 실패할 수 있는 기회에 도전하는 것이니 말이다. 

   기왕이면 면접이 좀더 다정한 대화 형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덤덤한 사람도 감정 기복이 일렁이는데 마음 약한 사람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무시하고 공격하는 폭력적인 언어 형식의 질의응답식이 아니라 함께 존중받는 대화를 통해 당락에 상관없이 면접자는 필요한 인재의 역량이 무엇이고 응시자는 자신의 역량을 어떻게 펼칠 수 있는 지 편안한 분위기를 통해 설명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떨어져도 면접이 자극이 되고 감사해지는 그런 친절한 면접 메뉴얼이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쌀방 여사님, 1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