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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네 Apr 08. 2021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

어제 만난 사람

며칠 째 내리는 장마비는

사람의 기운을 비처럼 흘러 내리게 한다.

오늘도 갑작스럽게 약속을 하고 팥죽을 헤치우듯 먹고 나니

그나마 기운이 회복된다. 

'날씨는 꾸준히 자기 길을 가고 있는데, 비 때문에 기운없다'하는

것을 보면 어찌 생각하면 내 마음이 문제이지 싶다. 

도심 한 복판 자주가는 주택 골목에 숲이 무성한 정원이 있는 집이 있다.

매번 발길이 머물고 마음을 빼앗기다가 우연하게 주인을 만나  언제고 시간나면

오겠다던 약속을 해 두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이고 정원을 기웃거렸지만 

주인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은 운 좋게 그 집 정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나무가 도심 한가운데 빼곡히 심어진

그 곳에 주인은 칠순을 넘기신 할아버지시다.  

예전에는 학교 선생님을 하시다가

이제는 정년을 하시고 나무만 돌보시고 계신다는 그 분은 한 번 만난 인연으로

나무를 보고 싶다는 오늘의 나의 청을 순순히 들어주셨다. 

꽃들이 만발했던 봄날에

내마음 가득했던 설레임과 호기심만큼은 아니었지만

비에 젖어서 선 채로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나무들을 보고 있으려니

촉촉한 싱그러움 또한 봄날의 화려함 못지 않았다. 

50년 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하셨다는 할아버지는 여러 나무들을 설명해 주시며

자신을 위해서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들이 좋다고 하셨다.

아랑곳하지 않고 꽃 피우는 나무와 변덕스럽게 사물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나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시는 듯했다. 그저 내 할일 하는 것만으로도 족한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렸다.

싱그러움으로 위안을 주는 나무들이 고마워서 나무를 사랑하신다는 그분

학생들을 키운 선생님의 마음은 변함없이 나무를 향하여 그렇게 돌봄을 실천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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