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찜찜한 미래 1

  '귀신에 홀린다.'는 말이 있다. 요며칠 정말로 그랬던  듯하다. 사람들을 만날 때 나와 같을 거라는 착각을 자주한다. 참 나는 순진한 인간이다. 사람을 만나서 판단하는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의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너무 많아지면 그 순간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나와 같은 인간은 없을 수도 있다.

 나는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다. 네 기둥과 여덟 글자로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믿거나 말거나 긍정적인 미래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였다.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고 짬짬이 돈을 주고 철학관이니 점집이니 찾아다니며 기부를 하다보니 반풍수쟁이가 되었다. 

어쩔때는 철학관에서 사주를 풀어주는 사람을 만나서 내 사주풀이를 오행을 따져서 교정해 가면서 살아온 내 삶과 비교하며 대신 풀어주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만난 사람이 자신의 친척 중에 신기가 들린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나를 혹하게 하는 말이었다. 신기들린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의 운명을 풀이해 주는 지 궁금해졌다. 쓸데 없는 호기심은 명을 단축한다는 말이 있는 지 모르지만 내 후일담 끝에 친구가 웃으며 해 준 조언이다. 

독촉하고 서둘러서 사람을 만나러갔다. 기대와 달리 외형이 너무 낯설었다. 약이나 술에 취한 중독자와 같은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신이 들렸다고 하니 별다른 것이 꼭 있을 것만 같았다. 지나친 호기심은 명을 단축하는 것 말고  시간 낭비와 물질을 낭비할 수 있다.

한번, 마음 먹은 것은 일단 끝을 보자는 나의 의욕과 달리 첫만남은 얼굴만 보고 끝이 났다. 다시 두 번째 만남을 추진해서 날을 잡았다. 만남 전에 내가 알려준 나의 생년월일이 다르다는 연락이 왔다. 처음 그 연락을 받았을 때 왜 신박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쓸데없는 확대 해석이고 기대감이 부른 더큰 실망의 단초였다.

사실 내 생일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친정 엄마가 음력으로 그믐이라고 하였는데, 내가 태어난 그 해의 그 날짜가 없어서 20여년 전부터 하루를 앞당겨서 생일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와 합의한 그믐날 대신 초하루날일 거라는 주장은 신박하게 들렸다. 생각해보면 어느 달의 마지막 날이 없어서 앞당기는 경우와 뒷날로 미루루 두 경우가 있는데 나는 친정 엄마와 고민 끝에 앞당긴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루를 미루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주팔자에서 생일을 바꾸고 시간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미래가 바귀는 신선함을 주었다. 년주와 월주의 두 기둥은 과거의 삶을 대변한다면 일주와 시주는 미래의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내 미래를 리셋하는 생각으로 통쾌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일주 중심의 사주팔자 풀이에서 전제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를 남자로 삼고 설명하는 것만큼 큰 변화이고 한 사람의 일생을 재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박하고 통쾌해서 좋았다. 그런데 그것은 점점 늪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평소 내가 주장하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명으로 납득될 수 없는 찜찜함의 시작이었다. 대상과의 관계에서 찜찜하거나 불편한 것들에 대해서는 명확해질 때까지 파헤지고 실체를 확인한 다음에 단호하게 관계를 규정짓는 나의 성향이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