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오늘은 내 생일이다.
주민등록증에 적혀 있는대로라면 매일 똑같은 날짜에 생일을 맞이하겠지만, 우리집에서 내 생일은 '음력'으로 지낸다. 그래서 매 년 생일 날짜가 달라진다. 음력으로 1월 4일, 올 해는 2월 15일이 내 생일이 되었다.
설 연휴 마지막이었던 어제,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 내일이 내 생일이라는 이야기를 잠시 주고 받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나를 보자마자 큰 아이가 소리쳤다.
오늘 엄마 생일이지?
기특하게도 엄마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니. 5살이 되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진 느낌이다. 안그래도 올 해 들어 아이들이 정말 많이 자란 것 같다며 매일 남편과 나는 감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아이가 한꺼번에 품에 안기며 "엄마 생일 축하해"라고 말 해 주었다. 가슴 한 가득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숨이 막히도록 꼭 안아 주었다. 그래, 오늘은 내 생일이다. 우리 엄마가 나를 낳아준 날.
등원 전,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얘기를 시작했다.
"아주 옛날에, 오늘, 엄마가 할머니 뱃 속에서 나왔어."
작은 아이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미미는?"
부연 설명을 하자면, 할머니 배가 항상 볼록 나와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그 뱃 속에 아기가 들어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미미'는 아이들이 지어준 '태명'이다. 아이들은 미미가 대체 언제 태어나는지를 매일같이 묻는다. 가끔은 할머니 배에 입을 갖다대고 태담도 해 준다.
"미미야, 빨리 나와. 언니가 잘 해 줄게. 엄마는 화를 많이 내지만 할머니는 화 잘 안 내. 그러니까 나와도 괜찮아."
할머니를 눕혀놓고 그 옆에서 미미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미미는 좀 더 기다려야 나와."
작은 아이는 엄마가 할머니 뱃 속에서 나왔다는 것도, 미미가 나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로 나왔어?"
나는 아이들을 제왕절개로 낳았다. 35주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고, 그래서 응급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을 하고 보니 나는 '켈로이드 피부' 였다. 즉, 상처 부위가 마치 지렁이 모양처럼 밖으로 튀어나와 매우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수술을 한지 벌써 만 4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그 부위는 흉측한 모습으로 돌출되어 있고, 무언가에 닿으면 아프고, 수시로 가렵기까지 한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아이들은
"엄마, 내가 여기를 찢고 나왔어?"
"내가 나올 때 의사 선생님이 칼로 여기를 찢었어?" 라고 묻는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 상처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걸까. 볼 때마다 신경을 쓰고, 굳이 상처가 보이지 않을 때도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불쑥 꺼내는 것을 보면 분명 강한 인상을 갖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할머니의 배에서는 그런 상처를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어디로' 엄마가 나왔다는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그 부위를 손가락으로 짚어주며 장난을 쳤다. 아이들이 재밌다며 까르르 웃었다.
등원길, 어린이집에 들어서서 선생님을 보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큰아이가 소리쳤다.
"오늘 우리엄마 생일이예요!"
부끄럽고 행복했다.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하원시키는 길에 커다란 케이크를 사 들고 왔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끌고 '엄마 생일케이크를 사야한다'며 빵집으로 끌고갔다는 것이다. 엄마 생일 케이크로 아이들이 골라온 것은 '뽀로로'와 '루피'가 춤을 주고 있는 초코케이크였다. 이거 엄마 케이크 맞지?
우리는 촛불을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껐다.
그런데 뒤에서 친정엄마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당황한 내가 물었다.
눈물을 훔치며 엄마가 대답했다.
"너한테 해 준 것도 없는데 니 나이가 벌써 마흔 하나다. 미안해서 그러지. 세상에 내 새끼 나이먹는 것 만큼 아까운게 없다."
아이들은 뽀로로와 루피를 가지고 놀며 까르르 웃고 있었고, 뒤에서 엄마는 소리 없이 울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낳은 아이들, 엄마가 낳은 나.
우리는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제발 빨리 좀 커라, 커라' 하루에도 수 없이 그리 되뇌었었다. 자고나면 2년쯤 지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일같이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나 많이 자라버린 아이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두 번 다시 아이들의 지금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운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이 벌써 5살이 되었다. 5살이 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나 뭉클하고 감격스러운데, 마흔 한 살이 된 딸의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 마음을 나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다는 모를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41년 전 오늘, 엄마는 조산원에서 3일 간의 진통 끝에 나를 낳았다. 조산원에서 산모가 위험하니 그만 포기하는게 어떻겠냐고 했을 때 큰외삼촌이 단호하게 '낳으라'고 하셨단다. 그렇게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5살난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두 달 후면 우리 아이들의 생일이다. 예정일보다 5주나 빨리 세상에 나와 엄마 품에 한 번 안겨보지도 못 한 채 곧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가야 했던 내 작은 아이들. 젖 한 번 제대로 물려보지 못 한 내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오늘 엄마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마흔 한살이 되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도 우리 엄마처럼 눈물이 날까.
"세상에서 제일 좋은게 내 새끼 입에 밥들어 가는 거고, 세상에서 제일 슬픈게 내 새끼 나이 먹는거다."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