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예의

나는 어쩌면 꼰대일지도 모른다

by 옥민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런저런 일들로 분주하게 지내느라 집중해서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던 내가 안타까웠는지 친정 엄마가 아이들을 친정으로 데려가 봐준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없으면 일단 내 일에 집중을 할 수는 있지만 한쪽 신경은 계속 아이들에게 가 있다. 해가 지고 밖이 어둑어둑해지자 나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어볼까 고민하고 있는 참에 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희가 손가락을 좀 다쳐서 지금 병원에 가는 중이다."


사정은 이러했다. 아이들이 너무 심심해해서 엄마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대형 마트에 갔고, 거기서 장난감을 샀고, 출출하길래 그 근처에 있는 빵집에 갔다. 빵을 먹고 나오는 길에 작은 아이의 손가락이 출입문 유리에 끼었다.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지만 손가락 부위라서 혹시 몰라 택시를 타고 근처 응급실에 가는 길이다.


70이 다 된 할머니가 장난감 보따리를 한 아름 들고 5살 난 두 아이를, 그것도 다치기까지 한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가고 있다. 밖은 어둡다.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절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즉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곧장 엄마가 가고 있다는 병원으로 출발을 했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길이 제법 막혔다. 평소라면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너무 당황을 한 나는 하필 길도 헷갈려서 30분이나 넘게 걸려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응급실 문 앞에 엄마와 두 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겨울 저녁이었다. 장난감은 또 왜 그렇게 큰 것을 샀는지, 두 개의 장난감이 다 애들 크기만 했다. 먼저 아이의 상태부터 살폈다. 의사 말로는 '뼈는 괜찮은 것 같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단다. 이미 저녁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서둘러 돌아와 아이들 밥도 먹여야 하고, 얼마나 다쳤는지도 살펴야 하고, 많이 놀랬을 친정 엄마도 진정시켜야 하고,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는 내게 전화로 괜찮다고 말했던 것과는 달리, 혹시라도 당신이 아이를 잘 못 봐서 이런 일이 있는 거라고 원망을 받을까, 정말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들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밥부터 먹였다. 그러고 있는 사이 소식을 들은 남편 역시 급하게 퇴근을 해 돌아왔다. 밝은 데서 아이의 손을 자세히 살펴 보니 왼쪽 중지와 약지의 손톱 부분이 까맣게 멍들어 있었고, 손톱 밑의 살 부분이 심하게 찢겨 있었다. 친정 엄마 말로는 당시에 꽤 많은 피가 흘렀다고 했다. 너무 속이 상했지만 나보다 훨씬 놀랐을 엄마 앞에서 수선을 떨면 엄마가 더 죄책감이 드실까 봐 최대한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잔뜩 예민해져 있는 우리 사이에서 정작 당사자인 아이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 밥을 다 먹이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갈 무렵, 그제야 엄마가 아이가 다친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한 가지 내 심장을 날카롭게 찌르는듯한 부분이 있었다.


빵을 다 먹고, 엄마가 아이들 키 만한 장난감 두 개를 가득 안고 빵집 문을 나서는 순간 뒤 따라오던 아이의 손이 문에 끼었다. 아이가 그 자리에서 자지러지듯이 울었고, 돌아보니 그 작은 손에서 피가 철철 흘르고 있었다. 엄마도 놀래서 소리를 질렀고, 매장 안에 있는 휴지를 들고 나와 급한 대로 아이 손을 감싸 쥐었다. 아이는 계속 울었고, 70의 노인은 당황했고 겁이 났다. 그런데 그 모든 모습을 젊은 직원 둘이서 가만히 선 채로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매장 안에 다른 손님은 없었고 한산했다고 한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엄마는 직원들에게로 가서 혹시 반창고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단다. 직원은 '여기는 그런 게 없으니 필요하면 근처 편의점 가서 직접 사라.'라고 했단다.


그 얘기를 듣는데 애써 침착하고자 애썼던 내 마음에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가 다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직원들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수 있고,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던 직원들의 처사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다. '예의'도 마찬가지다. 노인과 아이는 모두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우리는 그들을 '노약자'라고 부른다. 길을 지나다가 노인이나 아이가 위험에 처해 있는 듯한 모습을 본다면 가까이 가서 도움이 필요한지를 살피고, 할 수 있다면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학교 도덕 시간에 배워서 아는 일인가. 인간이기에,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그 매장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그 일을 설명했고 전화를 받는 당신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는지, 그 일이 기억이 나는지를 물었다. 여직원은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정말 '필요하면 나가서 직접 사라'는 말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모든 대화의 과정에 그녀는 뭐가 문제인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감도 잡지 못했다.


"눈 앞에서 아이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 울고 있고, 할머니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거 맞나요? 그리고 밴드가 필요하면 나가서 직접 사라고 한 것도 맞나요?"


"밴드가 있냐고 물으시길래 찾아보니 없어서 없다고 말씀드린 건데요."


대화의 단절. 이 젊은 여직원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나는 사장과 연결을 시켜달라고 했다. 그녀는 매우 밝고 친절한 목소리로 사장에게 메모를 남기겠다고 했다. 그리고 5분쯤 후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이라고 하는 사람 역시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역시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변명부터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던 내가 말했다.


"아까 그 여직원도 그렇고 지금 사장님도 그렇고 이런저런 얘기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지금 아이 상태가 어떤지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밖에서 다쳐서 그 안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매장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이의 손이 문에 끼어 피가 철철 흘렀다는데 어쩌면 사람들이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


사장은 그제야 잠시 머뭇거리더니 '죄송하다'라고 처음으로 사과를 했다. 사과 따위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그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았으면 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다 보니 직원들도 아마 당황을 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교육을 시키지 못 한 제 불찰입니다. 앞으로 교육에 더 신경 쓰겠습니다."


"사장님, 이건 교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장은 치료비가 필요하면 청구하라고, 치료비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나는 필요 없다고 했다. 좀처럼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너무나 해맑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 여직원과 다시 전화 연결을 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꼰대 짓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 등원을 시키고 나서 한 숨 돌리려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열어보았더니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제 그 빵집의 여직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어제 OOO 아르바이트 직원인데요, 그 쪽한테 이 얘기하려고 어제 아르바이트 그만뒀어요."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었다. 뒷 말은 더 보지 않고 바로 삭제를 해 버렸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 봐도 뻔했다.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까지 그만뒀단다.


이제 더 이상 화는 나지 않았다. 다만, 생각의 차원과 회로가 전혀 다른 '젊은 사람들'의 의식 세계에 대해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생각을 해 보았다. 남편도, 주변 사람들도 내 입장은 이해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라고 했다. 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와 뭐가 다른 걸까. 나는 그냥 아이가 다친 것에 대한 분풀이로 갑질을 해 댄 진상 고객이며 꼰대라서 그렇게 화를 낸 건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아이의 손톱은 여전히 까맣게 멍들어 있다. 그 순간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지, 엄마는 또 얼마나 놀랬을지가 그 손톱만 보면 계속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다 보니 점점 그런 것들과의 접점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 옛날 동굴 벽화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이 적혀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요즘 애들'은 어른들이 보기에 줄곧 버릇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측은지심'과 '인간에 대한 예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늘 아이들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라'라고 가르친다. 그 말 뜻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해를 하든 못 하든 나는 아이들이 그 진리를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기를 바란다. 적어도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해 보일 때 서슴없이 다가가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언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어른으로 자리길 바란다. 그것은 대단한 선의도 아니고, 거창한 친절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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