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

엄마와 나와 딸들 그 어디쯤에서

by 옥민혜

결혼을 하면 곧바로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삼촌의 소개로 처음 남편을 만났던 날, 그 맞 선 자리에서 나는 처음 보는 낯선 남자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나는 그 몇 마디 대화 속에서 이 남자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을 했고, 더불어 좋은 남편, 좋은 가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떤 확신 같은 것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어쩌면 남편을 처음 만난 그 날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던 것도 같다. 그렇게 내게 결혼은 곧 부모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렇게 결혼과 동시에 나는 엄마가 되지 못해 안달을 했었나 보다. 그렇게 장장 4년의 시간을 내내 아이를 기다렸다. 나는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누구보다 잘 키울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교만하고 거만했었는지 이제 와서 다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아이들이 신생아 단계를 벗어나고, 걷고, 말하고, 기저귀를 떼며 조금씩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하자 '생존'이 유일한 목표이었던 내게(쌍둥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 그 기준이 필요했다. 낳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생각지 못 했던 것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 나는 여전히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넘쳐나는 정보들, 소위 자식을 잘 키웠다는 엄마들의 무용담들, 그리고 수많은 육아서들. 그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 보아도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점점 더 공허해져 갔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일 때면 너무나 쉽게 자괴감에 빠져든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 그 사이에는 엄마와 내가 있다.


그 연결고리를 생각지 않고서는 절대 우리 아이들의 육아를 논할 수가 없다. 지금의 나처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을 것이고,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나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아빠의 도움도 없이 엄마는 혼자 나를 키웠다.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엄마는 어린 내게 '한'을 심어주었고, 엄마의 모든 것을 내게 투영했다. 나는 엄마를 위해 존재했고, 엄마의 기쁨과 엄마의 인정만이 나를 의미 있게 했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엄마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딸로, 늘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엄마가 웃을 때 비로소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건 스무 살이 훨씬 지나서였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냥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건 모두 '엄마 탓'이라고 혼자서 속으로 엄마를 원망하고, 이 모든 것을 엄마의 탓으로 돌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다. 나이 마흔이 넘어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당신이 아니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진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다르지 않은 질문이었고 그 두 가지가 분리될 듯, 분리되지 않은 채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엄마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구분하지 못 한 채 평생을 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의 삶에 내 삶을 오롯이 포개어 엄마가 웃으면 나도 웃고, 엄마가 울면 나도 울 수밖에 없는 이 숨 막히는 현실이 절망스러웠다. 엄마와 나의 삶은 이제 돌이킬 수도, 고칠 수도 없다. 우리는 그런 채로 남은 생을 살 것이다. 내가 싫든 좋든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 그쪽은 그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포기. 수용. 뭐 그런 것들로.


이제 아이들과 내 삶이 남았다.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말자. 우리 엄마처럼은 살지 말자.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자. 첫 단계는 그것이었다.


나는 우선 행복해지기로 결정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해지면 그렇게 행복한 엄마 밑에서 우리 아이들은 행복을 배울 것이다.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의 기본 정서는 우울해진다. 엄마가 늘 화를 내면 아이는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엄마가 화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기분을 맞추며 자라게 된다. 엄마가 슬프면 자신도 슬프고, 엄마가 기쁘면 자신도 기뻐지는 '감정 불구자'로 자라게 된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만큼은 나처럼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독립적으로 살아나가길 바란다. 나는 평생토록 단 한 번도 엄마가 행복해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건 ' 엄마의 삶이 곧 내 삶'이었던 내 평생의 삶에서 기인한 생각의 방식이었을 테지만, 이는 곧 내가 어떻게 사는지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을 행복한 엄마 밑에서 자라게 할 것이다. 조금은 이기적인, 자기밖에 모르는, 자식보다 엄마 자신을 더 아끼는 듯한 그런 엄마로 살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얄밉게도 느껴지고 어떨 때는 이해가 안 갈지라도 결국엔 늘 행복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엄마로 살 것이다.


내 딸들아. 너희는 꼭 행복한 사람이 되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렴. 그리고 그 행복을 주변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렴.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과 그것에 이르는 방법은 다 다르기에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엄마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살면 그런 엄마 밑에서 너희도 자연스럽게 행복해지는 너희만의 방법을 터득해갈 거라고 믿어.


사랑한다 딸들아. 우리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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