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한 엄마입니다

'엄마가 되고싶은 당신에게' 그 후

by 옥민혜

살면서 참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다. 나의 인생도, 내가 당신 인생의 전부였던 내 엄마의 인생도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삶에 고스란히 기대어 그렇게 평생을 애쓰며 살아왔다. 물론 산다는 것은, 그 누구의 삶이라도 결고 쉬운 것은 없으리라. 다들 저마다의 드라마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삶'이라는 것일 테니까.


내 삶은 곧 '엄마'다.


결혼 전에는 내 엄마가 나의 전부였고, 결혼 후에는 엄마가 되기 위한 것이 내 전부였으며, 엄마가 되고 나서는 엄마로 사는 것이 내 전부가 되었다. 누가 보면 한심하게 여길 수도 있는 삶이다. 내 이름으로, 내 몫으로, 이렇다 할 무엇 하나 이루지 못 한 삶이니 말이다. 물론 나름의 꿈을 갖고 그것을 갖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어쩐지 그 시절은 내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결국 내 삶은 '엄마'로 귀결된다.


내가 엄마가 되고 싶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았는지 이제 알 만한 사람을 다 알게 되었다. 그렇게 원하는 아이를 동시에 둘씩이나 얻게 되었으니 이제 내 삶은 행복하기만 할까. 그렇게 원했던 아이였으니 육아 또한 남들보다 좀 더 수월하지는 않을까. 누군가 그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라는 브런치 북에 나는 그런 글을 남겼다.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임신 성공'은 터널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터널의 시작일 뿐이라고. 임신이라는 터널을 지나자 거기에는 또 다른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절했던 임신이라고 해서 육아가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결혼 전 친정에서 16년 간 키웠던 강아지가 3년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가족 이상의 의미를 가진 아이였기에 강아지가 우리 곁을 떠난 후 우리는 모두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부모님에게 그 아이는 늦둥이 아들과 마찬가지였고, 형제 없이 자란 내게는 막둥이 동생과도 같았다. 웃을 일 없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웃을 일'을 만들어주는 해피바이러스였다. 아이가 없이 지내던 시절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인데, 자식에 대한 감정과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어떻게 다른 느낌인 것일까.


강아지는 그저 예쁘다.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자식은 절대 예쁘기만 하지는 않다. 자식을 키우게 되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이렇게나 다양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키운다는 것을 '새로운 우주'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겨우 5년짜리 엄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멀고 길다. 까마득하고 막막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 이처럼 나는 아이들을 만나고 난 이후, 엄마가 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을 전부 기록하고 싶었다. 몇 개월에 걸음마를 떼고, 몇 개월에 '엄마'라고 처음 말을 했고, 몇 개월에 기저귀를 뗏는지와 같은 일상의 기록이 아니라,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가 되어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은 것이다. 엄마만이 알 수 있는, 엄마가 되어 본 사람만이, 엄마로 살아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내가 엄마로 살아가는 한은 절대 완료가 될 수 없는 늘 진행 중인 글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 감정 역시 더 다양하고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덧붙여, '나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나는 조금씩 풀어놓을 생각이다.


남들 다 키우는 자식 똑같이 키우면서 참 유난스럽게도 이러쿵저러쿵할 말이 많은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더 '예민한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