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민혜 Sep 13. 2022

무서운것 vs 싫은것

예민함이 주는 선물

요즘 한창 Life of Pie 를 읽고있다.


천재적인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고,

철학과 종교를 넘나들며, 심지어 어느 한 순간 적당한 긴장감까지 놓치지 않은 채 독자를 끌고 가는 그 노련한 능숙함에 또 한 번 놀란다.





조난을 당한 작은 배 안에서 맹수 하이에나마저 단숨에 제압한 뱅갈호랑이와 단 둘이 남게된 Pi.

그 압도적인 물리적 크기와 위압적인 풍채에 기가 눌린 채 이제 곧 하이에나의 다음 타깃이 되겠구나 생각한 Pi 앞에 난데없이 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쥐 한 마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급기야 Pi의 머리 위로 올라가 매달린다.



오마이갓.


생각지도 못한 쥐의 등장.


뱅갈호랑이가 하이에나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등뼈를 오도독 씹었다는 부분에서도 별 동요없던 나는 쥐의 등장에 소름이 돋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쥐 한마리가  내머리위에 올라가 매달려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 순간 생각했다.

집채만한 호랑이가 눈 앞에 있는 것과 손바닥만한 쥐가 머리위에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끔찍할까. 답은 오히려 간단했다.


호랑이는 무서운 것이고, 쥐는 싫은 것이다.



살다보면


싫은 순간이 있고, 무서운 순간이 있다.

싫은 사람이 있고, 무서운 사람이 있다.


싫은 사람과 무서운 사람이 동시에 떠올랐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 다른 인물이었다. 이 두 감정은 명백히 다른것이다.


그 미묘한 감정을 분리하고 서로 다르게 겪어내는 것. 나는 이런 것들이 예민한 사람들만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들은 사는게  피곤하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예민함이 섬세함이라는 단어로 묘하게 포장되어 그럴듯하게 보여질 때도 있다.


이를테면,

이렇게 책을 보다가 별거아닐 수도 있는 부분에서 멈추고 한참을 사색할 수 있는 감정의 사치같은 것을 부릴 수 있다는 점. 나는 내가 가진 이런 나른한 감정의 사치가 좋다.


사치는 곧 끝이날 것이다.

이제 곧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나는 다시 평범한 누군가로 돌아간다.

12시가되어 마법이 풀려버린 신데렐라처럼.




작가의 이전글 내 브런치의 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