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책을 읽는 데는 꽤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의 문장들은 여린 살을 파고드는 가시 같고, 손톱 옆의 거스러미 같아서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내내 나를 아프게 한다. 고민하게 한다. 신경 쓰이게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 읽은 날 밤에 수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가 꿈에 나타났다. 16년이나 함께 했던 내 살붙이 같은 녀석이었다. 꿈에서 녀석을 보고 새벽녘 아직 동도 트기 전에 잠에서 깼다. 사무친 그리움. 그리고 책을 읽으며 느꼈던 모든 감정들과 질문들이 일제히 떠올랐다.
나는 아직 작별하지 않았구나. 내 삶의 일부였던 대상을 잃고 아직 그때의 슬픔은 현재형이니 그리움도 슬픔도 사랑도, 나는 아직 그 어느 것과도 작별하지 않았구나. 내가 작별하지 않기로 한 이상 그 모든 영들은 내내 살아서 존재하는구나.
삶의 끝이 어디까지고 죽음의 시작은 어디부터인가. 육체가 사라진다 하여 그것이 죽음인가. 정신이 살아있다면 그것은 삶인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쏟아졌던 그 밤. 사랑하는 이들 먼저 보낸, 살아남은 자들의 역할과 의미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우리 모두 기억함으로, 작별하지 않음으로 삶으로서 죽음을 대신한다. 그 슬픔과 서러움과 분노와 그리움을 기억함으로써, 조용히 저항한다. 내가 작별하지 않기로 한 이상, 죽음은 또 다른 의미로서의 삶으로 내 안에 존재한다.
그녀는 인간의 내면 그 어느 아래까지 닿아봤을까. 실오라기 같이 작고 여린 언어들이 심장을 파고들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을 읽기 전에 나는 늘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