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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몽당연필

by 옥민혜

마음을 너무 많이 써서

마음이 닳아버렸다.


닳아버린 아이들의 연필을 깎아주다가

닳아버린 내 마음이 생각났다.


연필은 닳아버려도

연필깎이로 깎아주면 다시 뾰족해지는데

닳아버린 내 마음은 도통 방법을 모르겠다.


새로 깎은 연필을 보고 있다가

뾰족해진 만큼 길이가 줄어든걸 그제야 알아본

다. 닳아버린 연필은 뾰족해진 대신 그 살을 깎아내고 있음을.


아이들의 연필이 조금만 뭉툭해져도 나는 참지 못하고 사정없이 연필을 깎아댄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정엄마는

"그놈의 연필 얼마 쓰지도 못하고 네가 깎아서 다 버리겠다." 하신다.


새 연필은 금방 몽당연필이 되어버린다.


닳고 닳아 뭉툭해진 내 마음은

깎아줄 수가 없단다.

마음아, 너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며

쪼르르 들고 와서는 말한다.

"엄마, 내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고는 엄마가 읽으면 너무 좋을 거 같아서 엄마 보라고 빌려왔어."


[브로콜리지만 사랑받고 싶어]


브로콜리가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인기 있는 다른 채소들을 따라 하다가 결국 자기 모습 그대로가 가장 가치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아주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이야기.



마음아, 살을 내어주면서까지 깎아댈 필요도 없이 나에겐 여기 사랑이 있다. 닳고 닳아 더 이상 쓰일 수도 없을 것 같았던 마음은 이렇게 내 아이의 사랑스러움으로 온전해진단다.


그러나 마음아. 나는 이토록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한번 힘껏 안아주지도 못했다. 이제야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안함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몰아치며 그 새 또 마음이 쓰인다.


마음이 자꾸 닳아져 간다.

몽당연필들은 쓸모가 없어져 새 연필을 꺼내어 나는 다시 깎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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