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해서 뭐 하냐는 후회

재수를 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

by 오광락

적당한 점수와 실력이 있었기에 나는 재수를 결심했다. 공부는 혼자 하고 미술학원만 다녔다. 다행인지 몰라도 미술학원 원장은 본인이 입시 기간에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원비를 받지 않았다. 입시의 실패는 원장의 부재 때문이라는 약간의 핑곗거리도 있었고 일단은 자신만만했다. 문제는 입시보다는 술자리가 술보다는 연애가 고픈 시간이었다. 저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캠퍼스 라이프를 즐겼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여행을 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못내 부러웠다. 그에 반해 내 모습은 초라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재수를 한 게 후회가 될 무렵 드디어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알게 된 그녀는 꽤 먼 곳에 살고 있었다. 자신이 사는 곳으로 오라는 그녀의 말에 대뜸 나는 망설임도 없이 찾아갔다. 일단 만났고 일단 키스를 했으며 일단 사귀기로 했다. 아담한 키에 깡말랐던 그녀는 솔직히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단지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에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그러면서 간간히 만났고 얼마 안 가 헤어졌다.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입시에 집중해야 한다는 탓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이제 그녀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고백하는 족족 차이기 일쑤였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묻지 못했지만 나는 분명 무능력했다. 그녀의 저주가 아닐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할 수 없다는 사실만이 존재했다. 공허함이 남은 자리는 결국 또 죽느냐 사느냐로 귀결되고는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소개를 시켜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병이 도지고는 정신병자라는 핑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능력한 정신병자여서 연애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결론만이 존재했다.


그녀를 만나고 있을 때가 본격적으로 병이 시작되었다고 여길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우울함과 활달함이 때에 따라 번갈아 오면서 나는 더욱 길을 잃고는 했다. 감정기복의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그녀를 만나고 있을 때의 나와 헤어진 나는 너무나 차이가 심했다. 이별의 후유증은 분명 아니었다. 나는 분명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도 않았다.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하고 있다는 상실감이었던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사실 나는 그녀를 만날 때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지만 차였다. 이때 담배를 배웠다. 술을 마시며 인생이 참 쓰다는 걸 담배로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친구가 인생을 다 끌어안고 연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멋져 보였다. 나는 그에게 하나 달라고 했다. 피워보니 기침만 나고 쓰기만 하지 이걸 왜 피냐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러다가 한 두 번씩 생각이 나서 또 피다 보니 어느새 나는 중독이 되었다. 이제는 골초가 되어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담배 때문에 지적을 많이 받기도 했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듯이 재수도 당연하게 망해버렸다. 재수를 선택했었던 건 진짜 너무 후회되는 일이다. 그 나이에 맞게 같은 선상에서 어울려야 했다. 인서울을 못 해도 설령 대학을 가지 못 해서 일을 배우더라도 재수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해야 한다는 믿음은 신앙과 같았다. 오로지 인서울을 해야만 한다는 그릇된 신념이 박혀 버렸다. 나는 니체와 마르크스의 사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단지 그들이 유명해서 좋아한 건지도 모른다. 입시 준비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연애도 입시도 다 망해버린 나는 다시 죽느냐 사느냐를 떠올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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