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입학 후 달라진 세상의 모습
나의 기분은 날아가고 있었다. 한 겨울이었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 활활 타올라 있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기분은 더 훨훨 날아올랐다.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바로 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뜨문뜨문하던 SNS에 들어갔다.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모든 글들이 나를 위해 쓰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게임에서 세상을 구해낼 용사에게 퀘스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이유는 없었다. 단지 기분이 그렇다고 답해주고 있었다. 정치인들의 계정이 대부분이었기에 현 상황에서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 세상은 나에게 SOS요청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모두 들어주고 싶었다. 가능한 모든 글에 대해서 댓글을 달았다. 알고 싶은 게 많아질수록 팔로잉하는 계정이 늘어났다. 자신의 생일 및 자선 파티에 오라는 글, 노동자들을 위한 토론회를 연다는 글, 시위에 동참하자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가만히 SNS만 읽고 있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모임에 참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까스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에도 SNS를 계속하면서 나는 한 모임에 나가게 됐다. 거기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얘기들을 했다. 대체로 진정한 인권과 자유에 대한 얘기들이 많았다. 특히 진중권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혼자 앉아 술을 홀짝이고 있는 그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평소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하고 많이 읽고 있었다. 그가 비행기 조종을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먼저 그에게 가서 아버지가 헬기 조종사라는 얘기를 했다. 그는 관심이 있다는 듯이 비행기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비행기 조종사라는 이유 말고는 딱히 관심도 없었던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은 채 만 채 했다. 단지 유명인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데에 신기한 기분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기분의 방향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 나는 분명 이 세상의 구원자라는 생각이 뿌리내렸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거며, 나는 최종적으로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며, 나의 업을 완수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며와 같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이 들뜬 기분이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테이블을 돌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던 나는 이제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계속 빤히 보았다. 내가 사람들과 떠드는 와중에도 그녀는 나의 다리를 계속해서 쓱 훑었다. 나는 그녀의 행동이 당황스럽기도 신나기도 했다. 그녀가 내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만 분명 내 모습이 달라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당차고 자신에 차있는 나밖에 없었다. 용사가 전설의 칼을 뽑아 마지막 스테이지의 보스를 잡으면 될 뿐이었다. 더 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모임은 끝이 났다. 적당한 취기를 끌어안고 늦은 밤 학사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 예전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서 나에게 불러주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위해 찬양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나를 위한 실황 중계중이라고 믿었다. 도파민이 미친 듯이 차올랐다. 학사에 와서도 끊임없이 음악을 들었고 나는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안절부절 못 하는 나의 기분을 다잡기 위해 다시 생각을 정리해 봤다. 영화 트루먼쇼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수 있겠다는 걸 떠올렸다. 결국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이 꾸며진 거라는 걸 알게 되는 것과 같이 이제까지 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고 보았다. 지금까지의 내 고생은 가짜였다는 게 무척 위안이 됐다.
진짜 영광의 내 자리가 있을 것이라 일단 짐작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내가 세상을 완벽히 구원해 낼 날들만 남아있었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진정한 평온의 길로 향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피곤한 몸과 흥분된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잠시나마 잠을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