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완전히 미쳐버린 날
무사히 집에 도착한 나는 뭐하다 왔냐는 아버지에게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다며 소란을 피웠다. 클럽에 같이 간 친구는 사이비 신도로 의심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해서 욕을 퍼부었다. 아버지는 횡설수설하는 나를 괜찮다면서 달랬다. 진정이 된 나에게 아버지는 가족앨범을 꺼내와 보여주었다. 아버지가 왜 앨범을 보여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가족앨범을 보면서 설움이 북받쳐 미친듯이 울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나와 젋은 시절에 아버지가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고 이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뜩였다. 어쩌면 나는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더 이상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어렸을적 마냥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차올랐다. 그냥 나는 완전히 미쳐있었다.
그날 밤 당연히 잠은 오지 않았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두근거릴 뿐이었다. 새벽에 양복으로 갈아입고 무작정 거리를 나섰다.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며 신호등의 번쩍임이든 사람들의 눈빛과 손짓이든 움직임이든 간판의 이정표든 다 신호가 되었고 나는 그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순간 서울로 다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이비에 당해서 서울에 벗어나게 만든 게 아닌가 했다. 분명 서울에서 나를 위한 성대한 파티를 하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춘천에서 택시에 올라타 서울로 향했다. 돈은 없었고 정신은 오로지 서울만 가면 모든 게 해결 되겠거니 했다. 도착한 나는 기사에게 멱살이 잡혔다. 계산따위는 상관없었기 때문에 난처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했고 기사와의 실랑이는 일단 끝이 났다. 종로 일대를 거닐었다.
그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ATM기에서 여러번 돈을 찾아보았다. 혹시나 나에게 많은 돈이 입금되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호텔 앞에서 모르는 사람에 차에 타다 쫓겨나기도 했다. 이 차를타면 내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줄 알았다. 식당에 가서 무전취식을 하고 또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사장의 추긍에 딱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래도 된다는 생각밖에 않했다. 앞으로 나에게 닥쳐 올 미래를 생각하면 이런 시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끔임없이 나를 위한 환영 파티를 찾아나섰다. 어느덧 올림픽 경기장을 떠돌고 있었다. 경기장은 공연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장을 들쑤시고 다녔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동안 잠을 자지 못 한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 밤이 되었고 부모님의 집요한 설득때문인지 너무 지쳐서 그랬는지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망상은 내 기억까지 잠식하지는 못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기억이 다났다. 의식은 있는 상태에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약간 의구심이 드는 건 무언가 들어맞아보이는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나의 착간만이 아닌 실제로 세상이 나를 괴롭힌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물론 기분탓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망상으로 나타났다는 세상이 진짜라고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짐작만 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일 뿐이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고 무능력한 자신을 마주해야만 했다. 대신 여러차례 망상을 겪어오면서 내 마음만은 점점 건강해지긴 했다. 그리고 슬기롭게 인생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알아갔다.
빈곤과 고난의 역사가 반복되어가지만 풍요롭지 않아도 좋다고 인정하고 있다.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 한 경험을 했다는 것으로 만족스러운 지점도 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