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입원 그날들
여전히 모든 게 의심스러웠고 모든 게 다 나를 주목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침에 새엄마와 밥을 먹으며 TV를 봤다. 나는 여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그녀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뿐이었다. 그중에 선택된 누군가와 나는 이어지겠거니 했다. 밥을 먹고 다시 밖을 나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는 출근을 했고 새엄마는 안 간다는 나를 데리고 가까스로 병원으로 향했다.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계속해서 병원 주변을 겉돌기만 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아버지를 불렀다. 나는 병원 근처 PC방에 가서 SNS를 하고 있었다. 군복을 입고 나타난 아버지는 나를 끌고 가려고 했다. 그때 나는 저항하다가 알사탕 같은 방향제를 먹기 시작했다. 사탕일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야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탕이 아님을 알고 뱉으라며 나의 뺨을 후려쳤다.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머릿속이 댕댕거리고 있었다. 그 울림 때문이었을까. 나는 일단 병원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검사를 했다. 검사지를 작성하는데 도무지 진지하게 적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질문들에 떠오르는 대로 대충 휘갈겼다. 의사와 면담에도 거의 짜증으로 응수했다. 검사지를 몇 번 다시 작성해야 했다. 갖은 실랑이 끝에 대학 병원에 폐쇄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 일단 들어갔지만 도무지 이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서 난동을 부렸다. 소리를 지르고 기물을 던지고 다른 환자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결국 침실에 묶여 진정제를 맞았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잠시 마치 의식을 잃어 쓰러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밤이 되어있었다. 화장실에 갔고 볼일을 보고 나오려는데 창문 쇠창살 사이로 빨간 십자가가 보였다. 그렇구나. 나는 예수구나.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픽밥 받고 있구나 하며 마음을 다독였다는 무슨, 또 난동을 피우고 진정제를 맞고, 또 난동을 피우고 진정제가 반복되었다. 영화 올드보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 것이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만 지랄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아주 긴 시간 동안 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이나 지난한 반항 끝에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순응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일단 나가야 하기에 순교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신문, 잡지, 책을 보며 중요하다는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고 사인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겪게 된 상황에 대한 이유를 파악하려고 했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의사는 그런 내 모습을 다 알고 있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냐는 질문에 솔직히 답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같이 하얀 맨들로 의심했다. 사이비 신도거나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일 게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상황을 얘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최대한 의사와 간호사의 비위를 맞추며 태연한 척 하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새벽 여섯 시에 가장 먼저 일어나 TV를 봤다. 음악방송에서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따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나는 뮤직비디오를 보며 서울에서 떠돌던 기분을 느꼈다. 나를 위한 찬송가를 듣는 것으로 병원에서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아이돌의 춤사위를 보면서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다 소녀시대의 유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잡지를 보는데 그녀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됐고 운명의 상대라고 직감했다. 나는 날마다 그 사진을 보고 또 봤다.
매일 아침 환자들과 국민체조를 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것도 신호중 하나라며 아주 열심히 따라 했다. 밥도 약도 잘 챙겨 먹고 환자들과도 잘 지내고 있었다. 병동 생활에 충실하는 게 내가 지금 해야 할 최우선 임무라 생각했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국민체조를 건성건성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굳건하던 자신감이 흐려져 갔다. 예전의 의기소침하기만 하던 나로 돌아갈 것 같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