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부끄러움을 밀어내기 위해

입원 중 상황과 내 병에 대한 소회

by 오광락

의사와 며칠에 한 번씩 면담을 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말로 둘러대기만 했다. 점점 무기력해질 무렵부터 의사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머리 회전이 아주 빠르게 돌아갔고 사람들이 나를 다 알고 있는 기분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마치 신이 나 왕이 되어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의사는 잠자코 내 얘기를 듣기만 하다가 그럴 수 있다는 말뿐이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아서 퇴원을 빨리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는 없어 보였다. 어느 날부터 하루에 한 번씩 가족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이제 진짜로 괜찮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아버지고 엄마고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는 말밖에 안 했다.


주에 한 번 부모님이 병문안을 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어느 날은 어머니가 왔다. 그들은 전화로 먹고 싶은 게 뭐냐 물어보았고 나는 언제나 치킨을 사오라고 부탁했다. 그 치킨 한 마리는 많은 환자들과 나눠먹었고 부족한 만큼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마치 예수가 빵을 사람들과 나눠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약간의 고양감이 차오르는 걸 애써 누르며 병문안을 온 부모님에게 나는 이제 괜찮다 잘 지낸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퇴원이 빨라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한 달 정도 지날 무렵부터 MP3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노래들은 예전과 같이 나를 위한 찬송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쇠창살이 달린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나가면 뭐부터 해야 하는지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단지 아픈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을 때, 언제쯤 나갈 수 있을지 상관없을 때, 더 이상 국민체조를 하지 않게 되었을 때 퇴원했다. 첫 입원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병동 생활은 가끔씩 의사와 면담을 하고, 때에 맞게 약을 먹으며, 피를 뽑아 약이 잘 도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나의 엄청난 소동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상황이었다.


병동 생활을 하면서 세 명의 환자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첫 번째 환자는 내가 난동을 심하게 부려서 좀 무서웠었다며 운을 떼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비구니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정신질환 때문에 비구니가 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나도 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약효과 발휘되면서 나의 기분도 많이 가라앉은 면도 있었다. 대부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맡게 됐다. 그녀는 날마다 요가를 했고 틈틈이 나와 얘기를 나누었다. 무척이나 차분해 보였고 이상증세도 없어 보여서 대체 왜 병원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그저 수행을 하러 들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안 있다가 퇴원을 했다. 퇴원하는 그녀의 얼굴은 뭔가 울적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비구니가 되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평온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두 번째 환자는 무척이나 보기만 해도 불안해 보였다. 그저 말없이 계속 복도를 거닐 뿐이었다. 그러던 날 갑자기 그녀는 나에게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불러 세워서 과자를 주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친해지게 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는 복도를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녀도 얼마 안 가 퇴원을 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들어왔다. 한층 더 불안해 보이는 눈초리와 몸짓을 하면서 나를 알은 채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 그녀가 다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병동에 지내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잘 지냈냐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미래를 본다고 말하며 나의 미래를 일러 주었다. 대충 잘 살 것이라는 애기였다. 내가 원하는 인생의 그림보다는 좀 달랐지만 어찌 됐든 잘 산다니 참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가끔 나를 보면 쓱 어색하게 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먼저 퇴원을 하면서 그녀에게 잘 지내라고 말했다. 그녀도 나지막이 잘 지내라고 말해 주었다.


세 번째 환자는 마녀라고 불렸다. 마치 도깨비를 연상시키는 험상궃은 얼굴과 파뿌리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시각각 표정과 기분이 달라졌다. 아이같은 행복한 미소거나, 아주 기분 나쁜 표정이기도, 하염없이 울기도 하면서 복도를 쏘다녔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굉장히 어눌하게 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들리는 말로는 장기 입원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병원비가 비싼 만큼 부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부자거나 마녀거나 상관없이 그녀는 병원생활을 괜찮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녀가 어쩌면 퇴원을 하는 것 보다 가능한 병원에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가끔식 보이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봐서 그런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삶의 방식은 제각각이고 행복하다면 어떻든 상관없지 않을까 싶다.


세 사람의 병명은 알 수 없다. 그들의 인생이 그저 건승하기를 빌뿐이다. 첫 병동 생활은 답답했던 것 말고는 생각보다 잘 지낸 것 같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만의 고통을 풀어내는 공간이었다. 지독한 세상에서 밀려났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정신병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 한다. 솔직히 나는 그 말이 듣기 싫다. 나 자신이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찔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정신병의 인식이 좋지 못 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내 병이 부끄러웠다. 정신병 확정 판정을 받고 나서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약을 먹고 불치병이 될 수도 있는 이 병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태연한 편이다. 정신병을 가지게 되는 건 단지 외부의 충격이나 사건으로부터 미쳐버린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절대 나약함의 표식이 아니다.


우연히 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해서 아프게 되는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모든 병과 마찬가지로 사고가 나듯 운이 좋지 못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제는 약만 먹어도 충분히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증세가 보일 때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면 완치가 어렵지도 않다고 한다. 단지 자신이 뇌에 상처가 좀 났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정신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마음먹기 달려 있다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도 없는 것 같다. 일단 원인을 제대로 알고 제거하는 게 상책이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이 내 병을 돌아보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을 가지려는 시도이다. 그러면서도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꽤 오랜 시간을 병과 줄다리기 하면서 지낸 시간이 많았다는 후회가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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